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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상법문] 마음 가리고 있는 생각에 사로잡히지 마라
    현시대 스님들 가르침 2025. 11. 22. 21:01

     

    -범어사 방장 지유스님 부처님 오신 날 특별대담-

     

     
    부처님오신날을 보름 앞둔 지난 4월22일 금정총림 범어사에서 방장 지유스님을 친견했다. 지유스님은 “무명 때문에 중생이 고통을 받는 것”이라면서 “마음을 가리고 있는 ‘생각’에 사로잡히지 않아야 한다”고 설했다. 또한 지유스님은 최근 발생한 세월호 침몰 사고와 관련 “그 어떤 말로 위로가 되겠냐”며 안타까워했다.
    - 방장 스님은 부처님오신날 법어에서 “무명의 어둠 속에서 고통 받는 중생에게 지혜의 등불을 밝혀 고통에서 구제해주기 위해 부처님이 오셨다”고 설했다. 그 의미는.
    “무명(無明)이란 밝음이 없다. 어둡다는 말이다. 전깃불이나 등불이 없어 어둡다는 것이 아니라, 사는데 괴롭고 고통스러운 것들을 가리킨다. 괴로움에는 틀림없이 원인이 있다. 명예와 재물이 있어도 괴로움은 여전하다. 괴로움은 바깥에 있는 게 아니다. 그 원인에 대해 부처님은 ‘지혜가 부족해서’라고 했다. 밝은 등불이 우리 앞을 비추면 위험한 곳에 가지 않고, 올바른 곳을 골라 갈 수 있다. 그런데 불빛이 가려지면 어디로 가는지 모른다.”
    - 지혜는 어떤 것인가.
    “중생이나 부처님이나 똑같이 갖고 있는 것이 지혜다. 그런데 중생은 감정이나 생각에 사로 잡혀 지혜를 가린다. 근본에서 생각하면 괴롭거나 좋은 것은 다른 이가 그렇게 하는 것이 아니다. 나의 견해에 따라 좋고 나쁜 것이 생기고, 결국 괴로워한다. 나의 감정에 사로 잡혀 흔들리고, 집착하기에 어리석고 지혜롭지 못한 것이다. 깨달은 사람은 좋든 나쁘든 쓸데없는 생각에 사로잡히지 않는다. 따져보면 일체 생각이 나를 괴롭히는 것이다. 생각이라는 수레바퀴에 말려들어 허둥지둥 헤매고 있다.”
    생각이란 수레바퀴에 말려
    허둥지둥 해매고 있는 중생
    틀림없이 늙고 병들고 죽는 삶
    망상이 없어진 원점이 ‘깨달음’
    - 생각이란 도대체 무엇인가.
    “옛날 혜가대사가 달마대사를 찾아갔다. 혜가대사가 ‘불안에서 벗어나 마음을 편안하게 하는 안심법(安心法)을 구하러 왔습니다’라며 가르침을 청했다. 달마대사는 ‘그대가 괴롭다고 하는데, 괴롭히는 자를 데려오면 없애 주겠다’고 답했다.
    그 말을 들은 혜가대사가 가만 살펴보니 아무것도 없었다. 혜가대사는 ‘말씀을 듣고 막상 찾아보니 흔적도 없습니다’라며 ‘이제까지 흔적이 있었는데 이제 흔적이 없습니다’고 답했다. 그러자 달마대사는 ‘그대 소원대로 마쳤다’고 했다.
    중생은 생각 때문에 괴롭다. 그런데 생각을 깊이 살펴보면, 생각이 실제 존재를 그림자처럼 끼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생각은 곧 그림자이다. 예를 들어 바람이 분다고 하자, 그 바람은 어디에서 오는가. 바람이 없을 때도 있다.
    그 바람은 어디로 갔는가. 공기가 움직이면 바람이 불고, 움직이지 않으면 바람이 없어진다. 바람이 불었다고 해서 새삼스럽게 공기가 생기고, 움직임이 없다고 해서 공기가 없어지는 것은 아니다. 공기는 항상 있다. 파도도 마찬가지다. 파도는 물의 움직임에 따라 생기고 없어지는 것이다.
    생각도 이와 같다. 생각은 마음이 움직이는 것이다. 슬프다, 괴롭다, 억울하다, 분하다는 감정도 마찬가지다. 생각을 없애면 감정은 없어지는데, 마음은 없어지지 않는다. 다만 움직이는 동작이나 감정이 없어진 것뿐이다.
    모든 생각을 쉬어버리면 이때까지 가리고 있던 모든 것이 사라진다. 어리석어 지혜가 없기에 무명이 일어나는 것이다. 마음을 가린 생각에 사로잡히지 않으면 어떤 관계에 부딪혀도 끄달리지 않는다. 가난하고 가난하지 않고, 있고 없고, 관계없이 마음을 가리지 않으면 답답하지 않다. 사람들이 괴로운 것은 지혜가 부족하기 때문이다.”
    - 방장 스님은 지난 2월 동안거 해제 법문에서 “깨닫지 못하게 하는 방해물이 생각이다. 생각을 떨어뜨리면 저절로 알아진다”라고 설했다. 생각을 떨어뜨리는 방법은 어떤 것이 있는가.
    “(웃음) 생각을 안하면 되는 것 아닌가. 생각을 떨어뜨리려고 생각하니까 안 된다. 예를 들면 내 앞에 가린 것, 벽을 보자고 하자. 눈이 고장 났다고 하면 안보이겠지만 그렇지 않은 한, 눈 뜨고 있으면 잘 보인다. 한 시간 동안 지켜봐라. 보는 것은 어렵지 않다.
    특별한 기술도 재주도 필요 없다. 그냥 보면 되는 것이다. 그런데 보고 있으면, 지난 과거의 좋고 나쁜 생각이 마음속의 그림자로 나타난다. 벽을 보는 힘이 약하니 흐리멍텅하여 과거의 그림자들이 따라온다.
    누가 나를 딱 때리면 어떤 놈이 때리냐며 순간적으로는 아프다고 반응한다. 망상보다 심하다. 그런데 잠시다. 깨달은 사람은 정신을 차려야 한다. 잘 살피고 있으면 눈이 점점 밝아진다. 모든 그림자는 실제가 아니다. 눈빛이 약한 사람은 앞에 실물은 하나도 안보이고 옛날의 억울하고 분한 일만 보인다. 귀신이 보인다고 잠꼬대나 헛소리도 한다. 정신이 흐리니 모든 망념이 그림자처럼 일어나는 것이다.
    불빛이 밝으면 어둠이 없다. 불빛이 약해지면 약해진 것만큼 어둠이 온다. 그와같이 우리의 밝음이 크면 어둠은 반비례로 없어진다. 밝음이 백이라면 어둠이 제로, 어둠이 백이라면 밝음이 제로 아닌가. 모든 현상에 사로잡히지 말아야 한다.
    일상생활 속에서 앉아 있든 서 있든 마음의 그림자에 사로잡히지 말고 지금 현재 내 눈앞에 있는 것과 하나가 되라. 나를 비워 버리고, 산이면 산, 물이면 물, 사람이면 사람, 일이면 일, 경계와 하나가 되라. 깨달은 사람은 그것을 알기에 어떤 생각에도 사로잡히지 않는다. 그렇게 되면 소리가 나에게 그대로 들어오고, 빛이 나에게 그대로 들어오고, 모든 맛이 나에게 그대로 들어온다.”
    - 중생 가운데는 바르게 살면서 남을 돕는 착한 이들도 많다. 남에게 해를 끼치지 않는 이들도 무명으로 고통 받는 중생이라고 보아야 하는가.
    “무명이라는 것은 선(善)하고 악(惡)하고 와는 관계 없다. 물론 선이 악보다는 낫겠지만 악했던 그림자나 착했던 그림자나 그림자는 그림자이다. 선한 사람이라도 반드시 행복하고 괴로움이 없는 것은 아니다.
    아무리 착하게 좋은 일을 해도 불행이 오기도 하고, 남에게 나쁜 짓을 해도 잘 사는 경우가 있다. 그것은 인과(因果)의 소치이다. 무명은 악한데 사로 잡혀도 안 되지만, 선에 사로 잡혀도 안 된다. 선과 악을 초월해 자유자재로 굴릴 수 있는 것이 밝음의 지혜다,”
    - 현대인들은 생활에서 어떤 공부를 해야 하는가.
    “공부의 근본은 깨달음이다. 깨닫기 전에 여러 방법이 있다. 근기에 따라 맑은 사람이 있고 덜 맑은 사람이 있고, 조금 편한 사람이 있고 덜 편한 사람이 있다. 근본적으로 해결하려면 뿌리를 밝혀야 한다. 괴로움이란 생각으로 생기는데, 생각이 일어나기 전의 ‘완전 제로’라는 자리가 있다. 움직이지 않는 본체를 확인하면 일하다가도 움직인다.
    도인이나 선지식이 우리가 보기에는 감정도 없이 무심히 도를 닦기에 생각이 일어나지 않을 거라 보는데 천만에다. 그런데 지나고 보면 생각의 그림자는 없다. 그런 마음으로 생활하기에 선지식들은 설사 홀연히 생각이 일어났더라도 생각이 저절로 없어진다. 움직임이 멈추면 본연의 모습으로 돌아간다.
    최고의 안락한 자리이다. 이는 요달한 사람들의 이야기다. 그런데 그렇지 못한 사람들은 그 자리를 요달하기 위해 예를 들어 ‘도대체 무엇이 화내고 있는가’를 살펴야 한다. 깨닫게 되면 선지식과 같이 생각을 마음대로 자유자재로 굴릴 수 있다. 일반인도 이렇게 해줬으면 싶은데 어떨지 모르겠다.”
    - 세속에 있는 이들은 생활에 쫓기다 보니 공부에 집중하지 못한다.
    “아무리 생활에 쫓겨도 안 늙을 수 없고, 병 안들 수 없고, 안 죽을 수 없다. 생활이 바쁘거나 그렇지 않거나, 재산이 많거나 적거나 세월은 지나가고 틀림없이 늙고 병들고 죽는다. 예외가 없다. 이것을 각오해야 한다. 언젠가는 온다.
    아무리 바쁘더라도 잠자는 시간은 있다. 피곤하다고 바로 잠들지 말고 하루 생활을 돌이켜 보고 잘못된 점은 반성하고, 좋은 점은 보강하려는 자세가 필요하다. 언젠가 육신은 떠나는데 미리 미리 조용히 마음을 가라 앉혀야 한다. 그래야 죽을 때가 되어도 정신을 잃지 않고 맑은 상태를 유지할 수 있다. 늙음은 10년이 하루 간격으로 온다. 열심히 정진해라.”
    남 짓밟으라고 하는 것 ‘불행’
    가족과 이웃도 모두 행복해야…
    정화는 ‘상구보리하화중생’
    승려는 독신으로 오로지 수도
    - 참선수행은 무엇인가.
    “참선 수행을 특별한 것이라 보는데 그렇지 않다. 선은 본래 마음, 즉 불심(佛心)을 찾는 것이다. 생각은 반드시 일어난 자리가 있다. 바람은 공기에서, 파도는 물에서, 생각은 마음에서 일어난다. 생각을 털어버리고 원점으로 돌아가야 한다. 원점에서는 어떤 생각에도 사로잡히지 않는다. 조금이라도 감정이 있으면 제대로 못 본다. 어떤 장애물에도 걸리거나 가리지 않는 것, 그것을 선(禪)이라 한다.
    사람들이 워낙 감정이나 욕심에 끄달리다 보니 이를 해결하기 위해 염불이나 기도를 하는 것이다. 그래서 화두를 들고, 염불을 하면서 집중하는데, 이는 생각을 없애기 위한 방편이다. 그렇게 하면 산란한 생각이 차차 없어진다. 망상이 없어진 원점이 바로 깨달음이다.”
    - 세월호 침몰 사고로 수많은 희생자와 실종자가 발생했다.
    “안타깝다. 지난번 천안함에 이어 갑자기 발생한 사고로 많은 이들이 아프고 괴로워한다. 앞으로 이런 일이 또 다시 일어나지 않아야 한다. 사전에 대비책을 마련하지 못했는지 안타깝다. 더구나 선장이나 선원들이 먼저 달아나고 학생들은 기다리다 참변 당했다. 말이 되는가.”
    - 세월호 사건의 원인 가운데 하나가 그동안 한국 사회가 나만 잘살면 된다는 문화가 팽배해져 있어 발생했다는 지적도 있다.
    “요즘 사람들이 살아가는데 너무 급급하다 보니 눈앞의 문제만 해결하려고 한다. 살아가는데 기술이나 재주도 필요하지만 그것이 정말 사람을 행복하게 하는 것인지 살펴야 한다. 기술을 익히기는 것보다 남을 해치지 않고, 자기 욕심을 부리지 않는 그런 사람이 되도록 해야 한다.
    이것을 제쳐놓고 남을 짓밟고 1등만 하라는 것은 얼마나 불행한 일인가. 자기 혼자만 좋다고 행복한 것은 아니다. 혼자만 잘 먹고 잘사는 게 행복한가. 나와 가족, 그리고 이웃과 국민이 같이 즐거워야 진정한 행복이다. 우리 모두 이런 마음이 있으면 이번처럼 비참한 일은 없었을 것이다.”
    - 동산스님이 참여한 전국 비구승대회(1954년)가 열린지 70년이 되는 해이다. 정화불사의 정신은 무엇인가.
    “상구보리하화중생(上求菩提下化衆生)이다. 위로는 깨달음의 지혜를 구하고, 그것을 자기 혼자만 누리지 않고 모든 사람에게 가르쳐 주는 것이다. 그런데 이 정신을 우리가 입으로만 불렀지 실제로 실행하고 있는지 반조해야 한다. 실천은 못해도 잊지는 말아야 한다. 항상 자기를 돌아보고, 내가 얼마나 한걸음 앞으로 나갔는지 살펴야 하는데 부족한 것 같아 아쉽다.
    승려는 본래 독신으로 출가해 오로지 전문적으로 수도하는 것이 목적이다. 그런데 나라를 뺏기고 일본 사람들이 한국 승려도 결혼하는 제도를 만들었다. 그 사람들이 권력과 사찰을 장악했다. 해방 후에도 대처승 제도는 그대로 유지됐다.
    대처승 숫자는 많고, 독신승은 숫자가 적고 힘도 약했다. 대처승을 물리치고 비구승이 전통 승려라고 해서 정화가 됐다. 그런데 수도에 전념하도록 한 것이 정화의 목적인데 아쉬운 점이 있다. 지금이라도 승려들이 각자 반성하고, 한꺼번에 시정하지 못하면 조금씩이라도 노력해서 원래 모습으로 돌아가면 좋겠다.”
    - 지난해 범어사가 총림으로 지정됐다. 총림으로서 어떤 지향점을 갖고 갈 것인가.
    “총림이나 총림이 아니나 같은 범어사이다. 기본 목적인 ‘상구보리하화중생’을 버릴 수 없다.”
    - 현대 사회가 발전하면서 사회복지 등 불교에 요구하는 것이 많아졌다.
    “승려 입장에서는 더 큰 복지가 있다. 가난한 사람에게 나눠주는 사회복지도 좋은 일이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일이 있다. <금강경>에 (물질적인) 시주의 공덕이 크지만 자기 마음을 바로 잡는 것만 못하다고 했다. 각자 마음을 돌이켜 마음을 깨닫도록 하면 안팎으로 명실공히 이사무애(理事無碍)한 복지가 될 것이다. 이런 것을 권하고 싶다.”
    - 부처님오신날 독자와 대중에게 한 말씀.
    “(웃음) 제가 말씀 드리지 않아도 잘 알 텐데. 새삼스럽게 (웃음) 고맙다.”
    ■ 지유스님은…
    1931년 일본 오사카에서 출생했다. 1945년 귀국해 1948년 범어사에서 동산스님을 은사로 출가했다. 1975년부터 1977년까지 범어사 주지를 역임했고, 1991년 범어사 조실로, 2013년 금정총림 범어사 방장으로 추대됐다. 스님은 바깥 출입을 최소화하고 수좌와 불자들의 공부를 지도하는데 전념하고 있다.

    지유스님 ‘부처님오신날 법어’
    오늘은 부처님이 무명의 어둠속에서 고통을 받고 있는 중생을 지혜의 등불을 밝혀서, 고통의 중생을 구제하고자 오신 날입니다
    그렇다면 무명의 어둠이란 무엇입니까? 마음에서 일어난 생각(욕심, 감정 등)에 사로잡혀서 일어나기 이전의 본연의 마음(본래심)을 잃고, 생각이란 수레바퀴에 말려들어 허둥지둥 생각을 쉬지 못한 것을 말합니다.
    고통의 원인이 무엇인가 하고 조용히 생각을 가라앉히고 살펴보면 모든 생각이 나를 괴롭히고 있는 것이고, 그 생각을 쉬지 않는 한 고통이 없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세상의 무상한 것을 느끼고 영원한 진리를 구하고자 구도의 길에 들어섰어도 그것이 마음 밖으로 구한다면 수고만 할 뿐 아무 소용이 없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도란 무엇인고 하면, 모든 생각을 쉬고 생각 이전에 있는 본래심을 말합니다.
    心性(심성)이 無染(무염)하야
    本自圓成(본자원성)이니
    但離妄緣(단리망연)하면
    卽如如佛(즉여여불)이라
    “마음은 물들지 않고 본래 스스로 원만하니 다만 부질없는 생각을 버리면 만고에 변함없는 부처님이라.”
    이 말의 뜻을 깊이 살펴서 알게 되면 지혜의 등불을 찾으실 것입니다.
    나무 석가모니불
    <2014.5.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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