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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읽어보는 마하리지 법문] 절대진아는 의식의 부재(不在)상태나는 누구인가? 2025. 5. 25. 20:49
마하리지 : 자네들은 어떤 대상을 알려고 할때에 무엇으로 인식하는가?
질문자 : 마음을 통해서 입니다.
마하리지 : 아니지. 의식(존재앎)은 마음을 인식하는데, 마음은 의식을 인식하지 못해.
자네가 잠속에 푹 빠졌다가 깨어나는데, 누가 그것을 아는가?
마음 이전에 의식(존재의식)이 있고, 이 의식 이전에 의식을 아는 가장 근원적인
기본주체인 절대가 있지.
최종적인 결론을 말하자면,
앎(의식)의 부재(不在)상태(절대)에서 앎이 일어났고,
이앎의식이 세계와 모든 존재들과 모든 사물들을 가지고 온 것이야.
정신적 수행의 세계에 들어온 사람은 마치 불위에 올려 놓은 찬물에 비유할 수가 있지.
찬물을 불위에 올려 놓으면 거품이 일다가 시간이 지나면 끓기 시작하잖아.
그 끓는 단계는 그 수행자가 마음을 넘어가기 직전의 단계에 들어가는 것과 비슷해.
그 비등점에서 그는 말을 많이 하고 싶고, 묻고 싶은 욕구도 많아지지.
그러나 불을 계속 가열하게 되면 끓기가 그치고, 물이 점점 쫄아들기 시작하잖아.
그때가 그 수행자가 마음을 넘어서 내가 있다는 앎을 얻는 단계가 된다네.
이러한 이야기들을 듣고 나서 자네는 마음이 당장 침묵속으로 들어갈수가 있겠나?
내가 생각하기엔 '아니 올시다'일세.
왜냐하면 자네는 아직도 제잘난척 하는 그마음을 기쁘게 해주고 싶어 하니깐 말야.
자네가 진정으로 내가 하는 말을 이해한다면,
자네의 마음을 기쁘게하든 말든 전혀 상관할 필요가 뭐 있겠나?
내가 얼마전에 자네에게 "내가 있다"는 앎이 몸안의 체온과 같은 것이라고 비유해서 설명해 주었지.
절대란 어떤 것인가 말야.
절대는 바로 그 "내가 있음"의 온기를 전혀 경험하지를 않아.
자네가 이것을 이해하면 수수께끼는 바로 풀릴 것이네.
이것을 이해한 후에, 만일 그사람이 냐니(깨달은 각자)가 된다면,
그 의식근원과 몸을 사용할수가 있는데, 그것과 함께 감정적인 면도 같이 포함이 되지.
그런상태는 상황에 따라서는 실컨 울게도 하고, 어떤 경우에든 아주 즐겁게 하기도 한다네.
그런 각자(覺者)는 이 의식과 몸이라는 장치에서 저절로 나오는 어떤 감정표현도 억압하지를 않아.
보통사람들은 깨달은 이가 모든 감정의 표현을 억제할 것이라고 생각한단 말야.
그것은 아주 잘못된 생각이지.
절대 입장에 서 있으면 감정과 육체라는 장치의 본능적 표현에는 전혀 관여하지를 않아.
깨달은 이는 의지를 가지고 참여하지도 않고,
어떤 감정의 분출도 저절로 자연적으로 나타나는 대로 내비러 두지.
반면에 깨닫지 못한 무지한 사람은 그속에 깊히 빠져서, 모든 것이 실재한다고 믿고있지.
깨달은 覺者는 그 온기(내가 있다는 존재의식)는 실재하는 것이 아니며,
따라서 그 온기(의식) 범위내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도 비실재라는 것을 잘 알거든.
모든 헌신, 좋아함, 사랑(이라는 개념들)은 깨달은 이에게 있어서는 모두 녹아 없어져 버렸지만,
그래도 그가 하는 모든 일은 무엇이든지 다른 사람을 위해서 하는 것이라네.
- 니사르가다타 대담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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