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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잉태되기 전에 자네는 무엇을 하고 있었는가?
    나는 누구인가? 2025. 8. 7. 22:17

     

    [니사르가다타 마하리지 말씀]

     

    질문자 : 저는 기독교가 몸- 마음에서 의식으로 이끌어 주기는 하지만 그것을 넘어서지는 못한다고 생각합니다.

     

    마하리지 : 그리스도, 끄리슈나 기타 예언자에 관해서는 부디 한 가지 점을 분명히 이해하야돼. 그들이 몸-마음으로 현시되기 이전에 그들이 절대자였는지 아닌지 말이야. 그들이 몸을 가지고 나타났을 때, 그 과정에 들어간 원료와 장비는 오원소일 뿐이야. 또한 그 육체의 형상에서 일어난 존재성은 그 오원소가 상호작용한 결과란 말인데, 그것은 세 가지 구나를 통해서 그 자신을 표현하며, 그것은 오원소로 된 음식기운이 공급되는 동안만 지속된다구. 그리고 그 존재성이 사라졌을 때 그들은 자신의 존재를 몰랐고, 그들이 육신을 가진 상태에서 한 일들을 몰랐지.

    우리가 언제부터, 어떻게, 이 세상에 대한 경험을 가지게 되었나? 그 "내가 있다"는 존재성을 통해서 이거든.

    세상에 대한 경험은 오원소의 음식기운에서 나온 그 존재성이 생기고 난 뒤에, 혹은 나타난 후에야, 존재성을 통해서 경험을 할 수 있는 것이야. 이 존재성은 마치 망원경과 같애. 관찰자는 망원경을 통해서 달과 별과 해 등을 보는데, 그러나 관찰자는 망원경도 아니고 그것을 통해 보는 경치도 아니야.

    그와 마찬가지로 오원소로 나타난 세상과 우주에 대한 주시하기는 절대자, 즉 빠라브라만이라고 하는 불생 불멸의 영원한 원리에게 일어나는 거야. 그러나 최종 주시자인 절대자는 존재성인 주시작용의 중간 매개체도 아니고, 주시되는 대상인 현상계도 아니란 말야.

    그럼 자네에게 질문 하나 던져 볼까? 자네가 잉태되기 열흘 전에 자네는 무엇을 하고 있었는가?

     

    질문자 : 관찰하고만 있었습니다.

     

    마하리지 : 그런 말은 적절한 답변이 아냐. 지금 자네는 어떤 관점에서 말하고 있는 건가? 나는 지금 자네를 망원경의 관점에서 고정시켜 두고 싶어. 나는 자네를 존재성으로 끌어 내리는데 자네는 그 지점에서 벗어나려고 하고 있어.

    내가 자네에게 어느 망원경을 이야기했나? 바로 지금 어느 것이 그 망원경인가? 그것은 어떤 것으로 이루어져 있어. 그것은 어떤 것에서 나왔어. 자네는 이 지점에서 집중하지 않고 이것 저것 주서섬겨가며 자신이 많이 알고 있는 것처럼 생각하는데 말야, 자네가 지금 세상을 경험하고 관찰하는 것이 망원경을 통해서 하는 것이 아닌가? 그러나 절대자인 그대는 그 망원경야, 망원경이 아니야? 바로 이 지점, 그 존재성 안에 머물러 있는 것이 맞는 자세야. 그렇지만 자네는 자신이 있어야 할 관점을 떠나서 여기 저기 헤메고 있는 것이야. 그러고서 마음의 평안을 어떻게 유지할 수가 있냐말야?

     

    질문자 : 그것이 삶의 모든 요체입니다.

     

    마하리지 : 지금 자네의 그런 제세를 가지고는 아무리 많은 지식을 쌓아도 자네에게 마음의 평안을 안겨주지 않을 것이야. 존재성에게는 수많은 명칭이 주어지는데, 이 망원경이라는 것,존재성이 오원소로부터 만들어지는데는 아홉달이 걸렸어. 이것에 대해 깊히 생각해 본적이 있나? 그 망원경과 함께 이 세상 모든 것이 경험되고 눈에 보이지만, 그러나 그 관찰자는 망원경이 아니고, 그 너머에 있어.

     

    질문자 : 주 끄리슈나가 한 말 중에서, '내가 없어던 때는 결코 없었다'고 말했는데----.

     

    마하리지 : 그 망원경을 통해서, 즉 관찰자의 표현도구일 뿐인 그 존재성을 통해서, 그는 자신의 현상계를 보는 것이야. 그러나 망원경과 그 관찰 대상인 시야가 사라지면 그 관찰자도 같이 사라진다고 생각하나?

    하나의 대상이 있다고 말하려면 두 가지 조건이 있어야 되지. 하나는 그 대상이고, 다른 하나는 '대상이 있다'고 말하는 그 대상의 관찰자가 있어야 해. '존재성'의 1차적 성질은 '내가 있음'의 느낌이야. 그 이후에 여러가지 속성들이 나타나지. 그러나 절대자인 관찰자는 어떤 속성으로부터도 완전히 자유롭고, 그 때문에 그것을 니르구나 라고 부르는데, 이것은 바로 "무속성", 즉 속성이 없다는 뜻이지.

     

                                                                                             - The Necter of Immortality -

     

    [무한진인의 한담(閑談)]

    마하리지가 "내가 있다"라는 존재성에 대해서 이야기할 때 가끔 헷깔리는 일이 많죠. 이 세상 전체, 현상계가 "내가 있다"는 존재성이라고 하다가, 또는 존재성은 모든 현상계의 뿌리라고 하다가, 지금 살아 있다는 느낌 자체가 "내가 있음"이라는 느낌이라고도 하고, 또 육체가 있다는 느낌은 "내가 있다"는 것이라고 하다가도 또한 아니라고 하기도 하는 둥, 마하리지 책을 처음 읽는 분들이나 또 몇번씩 오래 읽어본 분들도 여전이 "내가 있다"를 정확하게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더우기 라마나 마하리쉬 같은 분은 "내가 있다"가 절대진아나 마찬가지라고 이야기하니깐 더욱 아리송합니다.

    그래서 기회있을 때마다 이에 대한 설명을 붙혀보지만, 그렇더라도 수십번씩 마하리지의 책을 읽어 본 사람이라도 아무리 자세히 설명을 해도 잘 이해하지를 못합니다. 그 원인 중의 가장 큰 것은 공부하는 사람이 자꾸 머리로만 "내가 있다"를 알려고 하기 때문이고, 그래서 "내가 있다"를 사고의 대상으로만 이해하려고 하기 때문에 어렵게 느껴지는 것이죠. 마하리지가 말씀하시는 "내가 있다"앎이라는 것은 대상적인 것이 아니라, 대상을 아는 그 자체를 말하는데, 그것을 알려지는 것이라고 생각하면 전혀 이해할 수가 없게 됩니다.

    간혹 한글 번역문에 "내가 있다"는 존재성을 <현현(現顯)>이라고 번역하는 경우도 있는데, 이것은 자칫 읽는 사람들이 <밖으로 나타난 것>이라고 오해할 수도 있어서 "내가 있다"가 볼수 있거나 알수 있는 대상화된 느낌이라고 잘못 이해하기도 하며, 또는 어떤 때는 <화물(化物)>이라고 번역한 곳도 있는데, 이것도 무슨 화학작용을 일으키는 장소처럼 여겨져서 책을 읽는 사람들이 엉뚱한 개념으로 상상할 수도 있습니다. 그렇다고 한글 번역을 잘못한 것은 아니지만, 근본적으로 인도 마라티어를 영어로 번역할 때에 적절한 단어를 구사할 수가 없아서 그런 단어를 쓴 것 같은데, 결국 그런 애매한 번역 단어 채용으로 공부하는 사람들이 이해하기 난감한 경우가 생기는 원인이 되는 것이죠.

    "내가 있다"를 현현(現顯)이라고 번역된 것은, 그 원리는 "내가 있다"가 이 세상이 현상화되는 첫번째 씨앗이기 때문에 이것을 현현이라고 번역한 것 같습니다. 따라서 모양과 이름이 생기기 직전의 현상계가 시작하려는 씨앗이라고 이해하면 되겠습니다. 또 '내가 있다"를 <화물(化物)이라고 표현한 것은 니사르가다타 마하리지의 독특한 표현인데, 이 "내가 있다"에서 복잡한 현상계가 한 곳에 집약되었다가 여기서 다시 다양하게 분산되기 시작한다고 해서 <화학작용>을 일으키는 것과 같다고 해서 <화물>이라고 부르는데, 저는 이것을 번역할 때 <존재핵점>이라고 번역을 했습니다.

    말하자면 존재의식의 씨앗이되, 그 씨앗이 깨알같은 점의 형태로서, 온갖 파동의식이 한 점속에 뭉쳐져 있는 상태라고 해서 <존재핵점>이라고 번역한 바 있습니다.

    이렇게 번역하는 것이 더 이해하기 쉽다고 생각되어서, <존재핵점>이라고 이름을 붙혔습니다.

     

    그러면 마하리지가 말씀하시는 그놈의 "내가 있다"가 어떻게 생긴 것이길래 이해하기가 어려운 것인가?

    마하리지가 어디선가 설명한 경우가 있는데, 어린아이의 탄생을 실례를 들어 설명한 적이 있습니다.

    어린아이가 어머니 자궁속에서 처음 잉태할 때가 처음 "내가 있다"는 존재의식이 생기는 것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이때는 존재의식은 드러나지 않고 말없이 육체의 형성에만 관여합니다. 어린애 입장에서는 "내가 있다"가 있는지 없는지 모릅니다. 아홉달이 지나서 어린이 육체가 태어나는데, 그때도 그 애기는 "내가 있음"을 모릅니다.

    그러나 "내가 있음"은 그 아이의 모든 생리적 작용을 자연스럽게 진행합니다. 말하자면 자연에 의해서 저절로 모든 몸과 정신기능이 저절로 갖추어지면서 자연적으로 생명을 창조 유지하는 우주적 의식작용을 합니다.

    이것은 "내가 있다"존재의식이 전체 우주의식으로 있으면서 생기,생명작용을 자연적으로 진행하는 상태입니다.

    아기가 탄생한 후 3~4년 정도 되어야 점차로 "내가있다"는 존재느낌을 자각하게 됩니다. 일단 아기가 "내가 있다"는 존재느낌을 알게 되면 "나"라는 개체성이 형성되기 시작합니다. 그 이전에도 "내가 있다"가 있었지만, 이때는 개체성이 희박하고, "내가 있다"존재성이 전체성 또는 자연성에 주로 의존해 있었습니다. 애기는 자신의 존재를 전혀 모르고 있는 상태입니다. "나"라는 개체성이 생기고 나서부터는 우주적 전체성이나 자연성인 "내가 있다"순수 존재의식이 작은 육체로 축소되고 "나"라는 개체성이 더욱 강성해 집니다. 아이가 점점 더 성장해서 어른이 되면 우주적 존재의식인 "내가 있다"는 잊어버리고 오직 '나'라는 개체 자존감만 강하게 나타납니다. 그러나 원래부터 있는 "내가 있다"우주적 존재의식이 없어진 것은 아니고, 육체개인의식에 가려진 것입니다. 바로 앎의 뒤에 가려져 있어서 우리는 그곳을 모르는 것로 간주합니다. 그 자신인데도 불구하고 말입니다.

    여기서 우리가 탐구해야 될 것은 어른이 되어 우주적 존재의식이 사그라지고 육체가 나라는 개체의식이 강해졌다고는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잉태된 후에 생긴 자연 우주 존재의식인 "내가 있다"가 완전히 없어진 것은 아니고, 후천적으로 나타난 '나'라는 육체동일시된 개체의식에 가려져 있을 뿐입니다. 그런데 어머니 뱃속에서 잉태되었을 때의 존재의식이나 태어난 후의 존재의식이나 성인이 되어서 "나"라는 개체의식이나 다 같이 "내가 있다"는 존재의식에 해당됩니다.

    아기 시절에는 순수한 "내가 있다"존재의식이지만, 3,4살정도가 지나고 부터 "나"라는 자아관념이 생길 때도 역시 오염되기는 했지만, "내가 있다"는 존재의식이고, 감각기관으로 드러나 이 세상 만물도 실은 "내가 있다"는 존재의식 안에 있습니다. 그뿐 아니라 어른이 되어서 육체 동일시된 "나"라는 에고도 역시 "내가 있다"는 존재의식 그 자체가 변형된 것일 뿐입니다.

    따라서 마하리지는 어느 때는 이 현상계도 모두 존재의식이라고 했다가, "내가 있다" 존재느낌은 모르는 것이라고 하하기도 하고, 현재 살아있다는 그 느낌이 "내가 있다"는 존재의식이라고 말하는 둥 어느 때는 종잡을 수가 없는 경우도 많습니다. 여기서 마하리지가 보통 "내가 있다"는 느낌 속에 안주하라는 것은 도데체 어느 지점인가?

    위에서 보았듯이 사람이 잉태(처음 정자와 난자가 결합할 시)될 때부터 "내가 있다"는 존재의식이 생겼으므로. 이때부터 몸이 태어날 때까지를 "내가 있다" 존재의식의 제1기라고 하고, 몸이 태어날 때부터 자기를 알게되는 3~4살 까지를 "내가 있다" 존재의식의 제2기라고 하고, "나"라는 것을 알 때, 즉 어른이 되어서 어렸을 때를 회상해서 3~4살경 처음으로 희미하게 엄마 등에 엎혀서 어디를 간다든가, 아니면 아빠에 대한 기억이 있는 그때부터 죽을 때까지 "내가 있다"존재의식의 제3기라고 부른다면, 순수한 존재의식은 아마도 몸이 태어나기 이전에 엄마 뱃속에 태아로 있던 그 시절의 "내가 있다"존재의식인데 완전 망각(忘覺)의 상태입니다.. 또는 제2기 때의 존재의식도 우리는 개체의식이 없었기 때문에 모르는 상태였습니다.

    이렇게 구분을 해 보면 제1기 "내가 있다" 때에는 존재의식의 씨앗에 해당하고, 제2기 "내가 있다"는 존재의식이라는 나무의 뿌리나 큰 줄기에 해당하고 나머지 제3기는 존재의식의 작은 가지나 잎파리들에 해당한다고 비유해 볼 수 있습니다.

    따라서 마하리지가 줄기차게 "내가 있다"는 느낌에 머물러 있으라는 말씀은 제1기와 2기인 "내가 있다"는 씨앗 또는 뿌리상태에 머무르라는 말씀입니다. 이때는 물론 모양도 없고, 속성도 없고 전혀 알 수 없는 상태입니다. 물론 처음에는 제2기의 뿌리나 큰 줄기의 "내가 있다"에 머무르는 연습을 해야겠지요. 이때도 전혀 알수없는 그런 상태입니다. 그러다가 점점 깊히 들어가 씨앗까지 도달해서 안정되어야 합니다. 그러면 "제1기 "내가 있다"존재의식에 안정되게 머물러 있으면, 저절로 그 "내가 있다"는 씨앗을 넘어서는 기회가 저절로 온다는 것입니다.

    위의 글 제목인 "잉태되기 전에 자네는 무엇을 하고 있었나?"라는 질문은 선불교에서도 똑같은 화두를 쓰는데, 특히 요즘세대의 조계종 종정인 진제스님이 이 화두를 항상 말씀하십니다. 이것은 바로 잉태되기 이전에 전혀 알 수 없는 그 자기의 상태를 의심하며 탐구하므로써 내면 깊히 들어가는 화두선 수행방법입니다. 그런데 선불교 화두수행에서는 처음부터 "내가 있다" 존재의식 이전으로 들어가려고 하는데, 이렇게 초보단계를 건너뛰어서 처음부터 깊이 들어가는 수행을 하면 초보자는 "내가 있다"는 존재의식까지 가는데도 엄청 어려워서 대부분 많은 구도자들이 화두수행을 중간에서 포기합니다.. 따라서 초보자는 처음에는 좀 더 초보자들이 하기 쉬운 염불수행이나 호흡수련, 위파사나 등으로 "내가 있다" 존재의식 제1기까지 진입한 다음, 위의 "잉태되기 전의 나는 무엇이었을까?"라는 화두를 드는 단계적 수행을 해야 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다시 해 봅니다.

     

    그러면 우리는 "내가 있다"는 존재의식을 도데체 일상생활에서 어떻게 다루어야 하느냐가 궁금합니다.

    "내가 있다"는 존재의식은 유위적으로 다룰 <손잡이>가 전혀 없습니다. 현재 중생입장에서는 그 "내가 있다"가 바로 보는 자인 나 자신이기 때문에 눈이 눈을 볼 수 없는 것처럼, 그것을 어떤 감각작용이나 마음의 대상물로 다루거나 생각할 수가 없습니다. 그것은 보이지 않는 곳, 전혀 모르는 지금 여기에 그냥 있습니다.

    그러나 처음에는 마하리지의 책을 열심히 읽으면서 이론적으로 친근해지고 이해하려고 애쓰고,동시에 만트라나 염불, 수행, 기타 호흡지켜보기나 주시수련 위빠사나 같은 기초수행으로 마음을 한곳에 집중하고 안정시켜야 합니다.

    "내가 있다"는 1차적으로 현상계를 관찰하는 자이며, 육체와 마음을 아는 자가 바로 "내가 있다" 이지만, 그것은 모양도,속성도 없고,알려지는 것이 아니라, 분별의식으로 전혀 알 수 없는 것입니다. 알수는 없지만 모든 것을 지켜보는 1차 주시자가 바로 "내가 있다"입니다. 물론 "내가 있다"존재의식을 지켜보는 2차 주시자는 절대진아이지만, 그 절대진아 자체가 되면 주시자라는 것이 사라지고 주시대상도 전혀 없습니다. 이것을 비이원적인 상태라고 합니다..

    "내가 있다"가 어떤 것이라고 상상하지 말고, 말없이 지켜보는 수련이나 만트라 수련등을 열심히 해서 우선 마음이 차분히 내면으로 향해야만 됩니다. 물론 한 가지 수행을 집중해서 탐진치가 소멸해야, 마음이 안정되고 제대로 마음이 내면에 자리를 잡게 됩니다. 단순히 생각만으로 "내가 있다"를 단정하거나, "육체의 느낌"이나 "깨어있는 느낌"을 "내가 있다"는 존재의식으로 착각하면 전혀 엉뚱하게 남의 다리 긁는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마하리지 말씀은 일단 이 "내가 있다"의 뿌리의식이 무엇인지를 확고하게 이해하고 나서 그곳에 계속 안주하고 있으면 저절로 그"내가 있다"를 초월할 수 있는 기회가 난다고 말씀하십니다. 이 "내가 있다"는 다른 측면으로 말하면 보통 "空" 또는 "無"라고도 표현하기도 합니다. 그 공이나 무가 체험적으로 말하면 무엇입니까?

    전혀 모르는 것인데, 그 모른다는 말이 안다, 모른다의 모르는 것이 아니라, 그 넘어, 즉 깨어있으면서도 자기자신의 존재조차 모를 때, 전체가 하나가 되었을 때를 말합니다. 그것은 말로 표현 할 수가 없고, 스스로 체험해 보아야 하는데, 여기서 체험이라고 말하니깐 또 좀 이상한데, 좌우지간 그 속에 들어가 보아야 합니다.

    마하리지가 말씀하시는 것은 그 속에서 안정되게 자리잡고 있으라는 말입니다. 그러면 결국은 궁극의 절대 진아가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내가 있다"가 육체가 있을 때는 존재의식이지만, 만일 육체의식이 사라지면 그것이 절대진아, 빠라마트만 상태가 됩니다. 그래서 간혹 라마나 마하리쉬가 "내가 있다"가 절대진아라고 말씀한 경우도 있습니다.

    (2015년 9월19일 작성분)

                                                                                                                                -무한진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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