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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읽어보는 마하리지 법문] 나는 의식이 아니고, 그 의식을 아는 자이다나는 누구인가? 2025. 8. 31. 20:49
마하리지 : 자네가 자네자신에 대하여 가지고 있는 개념들은 무엇이든 간에 진실이 아냐.
"내가 있음"이 원초개념인데, 그것이 세상 안에서 그자신의 기본적인 일을 하도록
놓아주어서 그것을 만족시켜 주어야 되거든.
중요한 일은 그것(의식)이 하나의 개념이라는 사실에 대하여
깨어있어야 되는 거야.
질문자 : 세상에서는 이개념이 항상 정상에 있으려고 애씁니다.
하다못해 아이들 한테까지도" 너는 시험에서 1등을 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자신의 개인성과 성격으로 남들에게 강압하는 것은 잘못된 것인가요?
마하리지 : 잘못된 것은 자네자신이 육체와 형상 속에 제한되어 있다고 여기는 것이야.
내가 지금 주려고 애쓰고 있는 이지식이란 것은
여러분들 각자가 똑같이 가지고 있는 "내가 있다"는 앎에게 주어지고 있는 거야.
만일 자네가 한개인으로써 이지식을 얻으려고 한다면,
결코 자네는 이지식을 얻을 수가 없다네.
질문자 : "내가 있다"는 하나의 개념이고, 만일 그 개념이 사라진다면,
그개념이 사라졌다는 것을 그사람은 어떻게 알수가 있나요?
마하리지 : "내가 있다"는 것이 한 개념이라는 것은
그개념이 있는 동안에 그것을 이해해야 되지.
일단 그것이 본래의 상태속으로 합일되어 버리면,
그것을 알고 싶어하는 누군가가, 아니면 무엇인가가 있겠어?
환영의 개체가 사라져 버린 것이지.
질문자 : 저는 이 "내가 있다"가 하나의 개념으로써 그것이 언젠가는 끝날 것이라는
사실을 믿읍니다만, 왜 제가 그것을 하나의 허황된 개념이라고 취급해야 하나요?
마하리지 : 바로 그생각이 언제, 어떻게 나타났나?
그생각은 그개념(내가 있다) 자체 안에서의 단순한 한 움직임으로써 나온 것에
아닌가?
만일 의식이 없다면 그런 생각조차도 있을 수가 없지.
의식이란, 전체적인 무시간 무공간의 불변(不變)상태 위에서 나타난 일시적인
상태란 말야.
그것은 나왔다가 사라져야 할 일종의 해프닝(사건)이야.
태어나는 이 육체심리적 뭉치는 자신에게 주어진 짧은 기간동안 자기삶을 즐기거나
괴로운 고통등을 당하겠지.
그런데 말야-
내가 경험하는 자가 아니고,
나는 (그경험자를)아는 자라는 사실을 알고 있는 한,
어떻게 내가 거기에 참견할 수가 있겠는가?
이것은 두말 할 필요없이 명백한 사실이야.
나는 몸과 마음을 단순히 지켜만 보는데,
의식은 즐거워하거나 괴로워하지.
의식은 고통 속에서 울기도 하는데,
좋아-, 울고 싶으면 울으라구 그래-
즐거우면 웃을 수도 있는 거고.
나는 그것이 순간적인 일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고,
그것이 떠나고 싶다면 가도록 내비러 두는 거야.
내가 여러분들에게 전수된 지식의 가르침을 이야기 하는 중에도
참을 수없는 고통을 느끼고 있는 데,
그것(의식)이 조금만 더 참을 수 없게 되면 신음소리가 나올수도 있네.
그것(의식)이 저 하고 싶은 대로 할수도 있겠지만,
나(절대상태)는 상관하지 않는다네.
자네가 이의식이 무엇인지 모르는 한에는
자네가 죽음을 두려워 하겠지.
그러나 자네가 이의식이 무엇인지 실제로 이해하게 되면,
그런 두려움은 떠나가고, 또한 죽음이라는 생각조차도 사라지게 된다네.
이의식은 시간에 묶여 있지만,
의식을 아는자는 영원한 절대자라구, 이사람아-
-prior to consciousne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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