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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다시 읽어보는 마하리쉬 말씀] 진아는 이것이나 저것이 아닌, "있음(존재)"일 뿐이다
    나는 누구인가? 2025. 9. 14. 20:55

     

    ㅇ. 마하리쉬 : 마음이란 자기를 몸과 동일시하는 것일 뿐입니다.

    그렇게 해서 창조되는 것이 거짓된 에고입니다.

    이 에고가 이번에는 거짓된 현상계를 창조하고 그 안에서 움직이는 것처럼 보입니다.

    이 모든 것이 거짓입니다.

    진아가 유일한 실재(實在)입니다.

    그 거짓된 동일성이 사라지면 실재가 지속되고 있음이 분명해집니다.

    그것은 실재가 지금 여기에 없다는 뜻은 아닙니다.

    그것은 항상 있으며 영원히 똑 같읍니다.

    또한 그것은 누구나 체험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누구나 자신이 존재한다는 것을 아니까요.

    "그는 누구인가?" 주관적으로는 "나는 누구인가?"입니다.

    거짓된 에고는 대상들과 연관되는데, 이 에고 자체가 그 자신의 대상이 됩니다.

    모든 대상성(객관세계)은 거짓입니다.

    (아는)주체야 말로 실재입니다.

    그대 자신을 대상, 즉 몸과 혼동하지 마십시오.

    그것이 에고를 낳고, 결국 세계와 그 속에서의 그대의 움직임, 그리고 불행이라는 결과를 낳습니다.

    그대 자신을 이것, 저것 혹은 어떤 것이라고, 아무개라고, 혹은 이러이러한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그 거짓만 놓아 버리십시오.

    그러면 실재가 스스로 드러날 것입니다.

    경전에서는 진아가 "영원히 현존한다"고 하면서도 무지를 없애야 한다고 말합니다.

    만약 진아가 항상 현존한다면 무지가 어떻게 있을 수 있읍니까?

    그 무지가 누구에게 있읍니까? 이것은 모순됩니다.

    그러나 그러한 말은 진지한 구도자를 올바른 길로 이끌기 위한 것입니다.

    만일 "그대도, 나도, 이 왕들도 일찍이 없었던 적이 없다-- "식으로 간명하게 말하면 그는 그 유일한 진리를 쉽사리 이해하지 못할 겁니다.

    스리 크리슈나는 그 진리를 선언했지만 아르쥬나는 그것을 이해하지 못했읍니다.

    나중에 끄리슈나는 선명하게 설명하기를,

    사람들은 그를 육신과 혼동하고 있지만 실제로는 그가 태어나지도 않았고 죽지도 않을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래도 아르쥬나가 그 진리를 분명하게 이해하기 위해서는 <기타> 전체가 필요한 것입니다.

     

    보십시오, 진아는 이것이나 저것이 아닌 "있음(존재)"일 뿐입니다.

    그것은 단순한 존재입니다.

    존재하십시요. - 그러면 무지가 종식됩니다.

    누구에게 무지가 있는지 탐구하십시오.

    에고는 그대가 잠에서 깨어나면 일어납니다.

    깊은 잠 속에서는 그대가 '나는 자고 있다', '나는 깨어날 것이다.' 혹은 '나는 오래 잤다.'라고 말하지 않읍니다. 그래도 그대는 존재합니다.

    깨어나고서야 그대는 잠을 잤다고 말합니다.

    그대의 생시상태는 그 안에 잠도 포함합니다.

    그대의 순수한 존재함을 깨달으십시오.

    육신과의 어떤 혼동도 없게 하십시오.

    육신은 생각들의 결과입니다.

    그 생각들은 여느때와 같이 활동하겠지만, 그대는 영향을 받지 않을 것입니다.

    잠들었을 때에 그대는 육신이 있든 없든 상관하지 않읍니다.

    따라서 항상 그런 상태로 있을 수 있읍니다.

     

    방문자 : 그런 활동과, 세간 사람들에게는 필수사항인 돈벌이를 어떻게 조화시킬 수 있읍니까?

     

    마하리쉬 : 행위는 어떤 속박도 형성하지 않읍니다.

    속박은 거짓된 관념일 뿐입니다.

    "내가 행위자다" 그런 생각을 놓아 버리고, 육신과 감관이 그대의 간섭을 받지 않고 자기들의 역활을 하게 내버려두십시오.

     

    ㅇ. 마하리쉬 : 바다는 자신의 파도를 의식하지 못합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진아는 자신의 에고를 의식하지 못합니다.

     

    ㅇ. 질문-몇사람이 마하리쉬께 질문을 했는데, 그 질문들은 궁극적으로 자기들이 아무리 애를 써도 '나'가 식별(포착)되지 않는다고 하는 하나의 질문으로 압축되었다.

    마하리쉬 : '나'가 식별되지 않는다고 말하는 것은 누구입니까?

    모르는 '나'가 있고, 잡히지 않는 '나'가 있읍니까?

    같은 사람 안에 두개의 '나'가 있읍니까?

    이런 질문은 그대 자신에게 하십시오.

    '나'가 식별되지 않는다고 말하는 것은 마음입니다.

    그 마음은 어디서 나옵니까? 마음을 아십시오.

    그러면 그것이 하나의 신화(가공적인 것)임을 알것입니다.

    자나까 왕이 말했읍니다.

    "나는 오랫동안 나를 망치던 도둑(마음)을 발견했다. 이제 그를 즉결처분하겠다. 그러면 나는 행복할 것이다." 다른 사람들도 마찬가지입니다.

     

    방문자 : '나'를 어떻게 알 수 있읍니까?

    마하리쉬 : '나-나'는 항상 있읍니다. 그것을 알 수는 없읍니다.

    그것은 새로 얻어지는 앎이 아닙니다.

    새롭고 지금 여기 없는 것은 금방 사라지고 말것입니다.

    '나'는 항상 있읍니다.

    그 '앎'을 가로 막는 방해물이 있는데, 그것을 무지라고 합니다.

    그 무지를 제거하십시오. 그러면 참앎이 빛을 발할 것입니다.

    사실 이 무지나, 심지어 知조차도 아트만에게는 없읍니다.

    그것들은 제거해야 할 군더더기입니다.

    아뜨만이 지와 무지를 넘어서 있다는 것은 그 때문입니다.

    그것은 본래 있는 그대로 남아 있읍니다. 그게 전부지요.

     

    방문자 : 저희들이 노력하는데도 불구하고 눈에 띄는 진보가 없읍니다.

    마하리쉬 : 새로 얻어지는 것에 대해서는 진보를 이야기할 수 있겠지요.

    반면에 여기서 말하는 것은 무지의 제거이지 지의 획득이 아닙니다.

    자기에 대한 탐구에서 어떤 진보의 종류를 기대합니까?

     

    방문자 : 무지를 어떻게 제거 할 수 있읍니까?

    마하리쉬 : 그대는 따루반나말라이에서 침대에 누워 있다가 잠이 들어,

    자신이 다른 읍에 가 있는 꿈을 꿉니다.

    그 장면이 꿈 속의 그대에게는 실제적입니다.

    그러나 그대의 몸이 여기 침대 위에 그대로 있읍니다.

    한 읍이 그대의 방에 들어 올 수 있읍니까?

    아니면 그대가 몸뚱이는 여기 놓아두고 이곳을 떠나 다른 곳으로 갈 수 있읍니까?

    둘 다 불가능합니다.

    따라서 그대가 여기 있다거나 다른 읍을 본다는 그 두가지가 다 실재하지 않읍니다.

    마음에게는 실재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말입니다.

    꿈의 '나'는 곧 사라지고, 다른 '나'가 그 꿈에 대해서 이야기 합니다.

    이 '나'는 그 꿈 속에서는 없었읍니다.

    두 가지 '나'가 모두 실재하지 않읍니다.

     

    항상 지속되는 마음의 바탕이 있는데, 이것이 그토록 많은 장면들을 만들어 냅니다.

    각각의 생각과 함께 하나의 "나"가 일어나고,

    그 생각이 사라짐과 함께 그 '나'도 사라집니다.

    매순간 많은 '나'가 태어나고 죽습니다.

    존속하는 그 마음이 문제입니다

    자나까에 따르면 그것이 도둑입니다.

    그가 누구인지 발견하십시오. 그러면 행복해 질 것 입니다.

     

    ㅇ. 마하리지 : "물방울이 바다에 합일되는 것은 누구나 알지만, 바다가 물방울에 합일 되는 것은 아는 사람이 거의 없다."고 하는 까비르의 시를 방안에 있는 사람들에게 낭독해 주면서,

    이것이 최고의 헌신이라고 말씀하셨다.

     

                                                                                           -라마나 마하리쉬 대담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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