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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시되지 않은 세계로 들어가기(8)현시대 뉴 에이지 영성법문 2025. 4. 1. 22:00
깨어있는 죽음
이미 말했던 꿈 없는 잠 외에도 저절로 열리는 또 하나의 문이 있습니다.
그 문은 육체가 죽는 순간에 잠깐 열립니다.
당신이 평생동안 영적인 깨달음을 위한 모든 기회를 놓친다고 해도 육체가 죽는 순간 마지막 하나 남은 문이 열릴 것입니다.
죽음 직전에 다시 살아났다고 하는 많은 사람들은, 대개 그 문을 찬란한 빛이라고 표현합니다.
그들 중 상당수가 더 없는 축복과 깊은 평화를 느꼈다고 말했습니다.
<티베트 사자의 서>에서는 '찬란하게 빛나는 무색의 공간'으로 묘사하면서 그것이 곧 '당신의 진정한 자아'라고 말합니다.
이 문은 아주 잠깐만 열릴 뿐이며, 당신이 살아 있는 동안 현시되지 않은 세계의 차원을 경험해 보지 못했다면 놓치기 쉽습니다.
대부분 사람들은 지나친 저항과 두려움을 갖고 있고 감각경험에 지나치게 연연하며, 현시된 세상에 너무 깊이 동화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그 문을 보고도 두려움이 앞선 나머지 돌아서게 되고 의식을 잃어버리게 됩니디.
그 이후에는 대부분 무의식적이고 자동적으로 반응하게 됩니다.
결국엔 탄생과 죽음의 윤회를 되풀이 하게되는 것입니다.
그들의 현존이 의식적인 분열을 이루기에 충분히 강하지 못한 것입니다.
질문 : 그 문을 통과한다는 것은 소멸을 의미하는 것 아닙니까?
툴레 : 다른 모든 문을 통과할 때와 마찬가지로 당신의 빛나는 본성은 남아 있습니다.
개성이 남아 있는 것은 아닙니다.
어떠한 경우이든 개성 안에서 진정한 가치가 있는 참된 것은 빛을 발하는 진정한 본성입니다.
그것은 결코 사라지지 않습니다.
가치있고 참된 것이라면 그 어떤 것도 결코 사라지지 않습니다.
죽음이 가까워진 상황이나 육체적인 형상이 분해되는 죽음 자체는 항상 영적인 깨달음을 위한 크나큰 기회입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대부분은 그 기회를 놓쳐버립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문화라는 테두리 안에서는 진정으로 중요한 것에 대해 거의 전적으로 그러하듯,
죽음에 대해서도 거의 완전한 무지 상테에 있기 때문입니다.
모든 문은 죽음의 문입니다. 거짓 자아가 죽는 문입니다. 그 문을 통과할 때, 심리적인 마음이 만들어낸 눈에 보이는 모습으로서의 당신 자신은 막을 내립니다. 그때 당신은 눈에 보이는 모습과의 동일시가 환상이었던 것과 마찬가지로 죽음 또한 환상이라는 것을 깨닫습니다.
죽음은 환상이 끝나는 것일 뿐입니다. 환상에 매달리고 집착하기 때문에 죽음이 고통스러운 것입니다.
- 에크하르트 톨레 지음, 노혜숙, 유영일 옮김 <지금 이 순간을 살아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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