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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행스님] 아는 거든 모르는 거든 그냥 무조건 공에다 놔버리세요대행스님법문 2025. 12. 10. 22:04
어떻게 해야 탁 놓을 수 있을지
질문 스님들께서는 자꾸 놓으라 하시는데 저는 여기저기서 주워들은 게 많아서 그런지 분별이 많아 탁 놔지지가 않습니다. 어떻게 해야 탁 놓을 수 있을는지요.
답변 나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지금 모두 각자가 다 이게 물건이 있으면서도 공입니다. 아는 거든지 모르는 거든지 머리에서 좀 아는 거는 다 공에다 놨으면 좋겠습니다. 놓는 것도 믿어야 놓을 수 있습니다. 덜 믿기 때문에 못 놓습니다. 모든 것이 어디에서 나오는가. 오직 들고 나는 것은 한군데밖엔 없습니다. 구멍 없는 구멍. 나고 드는 곳은 오직 그거 한군데밖엔 없어요. 그렇기 때문에 그 한군데를 노리고 거기에다, 놓는 것도 거기에다 놓으면 됩니다. 그건 무조건, 그냥 무조건이에요.
차라리 무지막지하게 모르는 사람 같으면 무조건 들어갑니다. 그런데 아는 게 머리에 너무 많단 말입니다. 꽉 찼어요. 그러나 그 아는 것도 똘똘 한데 뭉쳐서 그냥 공에다 놓으세요. 놔도 그 자리가 그 자리니까요. 머리에서 아는 게 떠올라도 처음에는 놓으셔야 합니다. 그럼 그걸 얻다 놓느냐? 여러분이 더 잘 아실 거예요. 내가 없다면 공도 없다는 거. 바로 내가 공이니깐 나한테 놔야죠. 그것도 이름해서 ‘당신 주인공에다 놔!’ 하거든요. 내가 공인데 거기에 무슨 화두가 또 붙느냐 이겁니다. 내가 공이고 내가 화두인데, 그 화두에다 놔라 이거예요.
놔 버리다 보면 자연적 싹이 트게 됩니다. 그때에 의정이 나게 되죠, 정말 의정이. 그저 생활 속에서 의정이 아닌 게 없어요. 그때 딴 사람은 모르지만, 만약에 여러분이 다 놓을 수 있어서 다 놓게 되면, 그때 싹만 난다면 그때는 그 아는 거를 써먹게 되는 거죠. 저절로, 아니까 저절로 나오는 거지만 그건 이차입니다. 이차로 돌리셔야죠. 자꾸 그게 앞서기 때문에, 앞설 것이 자꾸 뒷서기 때문에 이게 엇갈리고 아리송하고 그렇게 되는 겁니다.
내가 나를 발견하는 거는 상당히 쉬운 것입니다. 그런데 좀 미련한 듯해야 쉽다 이겁니다. 그러니 아예 그냥 무조건 놔 보십시오. 지금 여러분의 머리에는 억만 가지로 이 실이 두리두리 두리두리 그냥 엉켜서 잔뜩 쌓여 있거든요. 이걸 풀려면 이 인간으로선 보이지 않는 실밥이 뭉친 거기 때문에 보이지 않는 데서 풀어야지, 보이는 데서는 절대로 풀 수가 없어요. 도저히 풀 수가 없습니다.
그냥 놔야 그 실밥은 한순간에도 풀릴 수 있는 거죠. 그 한순간에 풀린다는 것은 그만큼 내가 모든 거를 쌓았기 때문에 탑 위에 봉우리가 올라가는 거지, 탑을 쌓지도 않고 그게 올라가나요? 그러니까 그냥 놔 보십시오. 오늘부터, 놔지나 안 놔지나. 그 본래 놔져 있다고, 놓고 간다 이런 것까지 아시는 분이 그 실천을 하지 못하시면 어떡합니까.
제 인생이 허무하게 느껴집니다
질문 병원에 입원해서 치료 중인데 그동안 아득바득 살아왔던 제 인생이 너무 허무하게 느껴집니다. 어떠한 상황에서도 여여해지고 싶은데 아직은 믿음이 부족한가 봅니다.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답변 오늘날 우리 불교가 기복으로만 나가기 때문에 자신을 알지 못하고 자신을 깨닫지 못하고 자신의 그 모든 일체 만법을 맛을 모르고 먹을 줄 모르고 줄 줄도 모르고 이거는 막막하기가 한량이 없습니다. 그래서 병이 생겨도 어떻게 처리해야만 낫는지 그것도 모르고 누가 그러는지도 모르고, 어디서 오는지도 모르고 어떻게 해야만 가는지도 모른다 이겁니다. 그럼 여러분이 죽는다 산다 이것이 사후에 어떻게 되느냐? 이 문제들도 여간 문제가 되는 게 아닙니다.
예를 들어 굼벵이가 매미가 될 수 있는 것도 그 근본 축이 있기 때문에 될 수 있는 겁니다. 영원한 자기 생명이 있기 때문이다 이 소립니다. 그러니까 대의적으로 봤을 때는 영원한 생명이 있기 때문에 매미가 될 수 있죠. 그런데 매미가 돼서도 스스로 자기 마음의 차원이 조금 ‘나는 왜 기어다니기만 할까? 왜 저렇게 날지 못할까?’ 할 때 날 수 있는 진화력이 생긴단 얘깁니다. 그런데 자기는 굼벵이가 매미가 된 것도 모르고 매미가 굼벵이였다는 것도 모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병도 어디서 왔는지, 내가 이걸 어디로부터 어떻게 해야 처리가 되는지 그것조차도 여러분이 모른단 말입니다. 그러니 얼마나 허무하겠습니까? 인생이 늙어가면서, 벌써 이 세상에 생겨났다 하면 뚜벅뚜벅 죽으러 가는 형편이니 얼마나 허무합니까, 인생이? 고생은 고생대로 죽도록 하고, 쳇바퀴처럼 말입니다. 돌아가면서 자식 기르느라고, 아니 햇빛 주랴 묵은 빚 갚으랴, 이건 여념이 없이 그냥 돌고 돌고 또 돌고 돌다가 머리는 허옇게 세어지고 인제 수족은 못 쓰게 되니 얼마나 허무한 문제입니까?
허무하지 않다는 사실을 알려면 이 도리를 꼭 공부해야 합니다. 여러분은 늙으나 젊으나 이 몸이 있을 때 바로 그 도리를 알아야 진화력이 생겨서 바로 화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야 죽지 않는 도리를 알게 되고 바로 끄달리지 않는 도리를 알게 되고 업을 지니지 않는 도리를 알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만날 기복으로만 그저 밥이나 해 놓고 떡이나 해 놓으면 부처가 잘 먹는 줄 알지만 여러분의 부처가 다 먹어치우고 가지 않습니까? 생각해 보십시오. 이 부처가 “더 가져오너라. 덜 가져오너라. 많이 가져오너라. 맛있는 거 가져오너라. 다 내가 먹겠다.” 이럽디까? 그러니 기복으로 해서는 안 됩니다. 모두 말들은 좋죠. “부처가 어디 있습니까?” “마음에 있습니다.” 또 “하나님이 어디 있습니까?” “마음에 있죠.” 이런 말들이야 뭐, 누군 못 합니까? 실천이 문제지. 그 근본의 실천이 문제입니다. 한 걸음 한 걸음 떼어 놓을 때 공짜로 떼어 놓지 말라 이겁니다. 말을 하면 그 뜻과 말과 행이 같아야 된다 이겁니다.
그러니까 여러분이 그냥 자가발전소가 그대로 있으면서 가설이 된 데에 용도대로 자기가 스위치 눌러서 쓸 수 있는 그러한 여건의 능력을 기르시라 이 소립니다. 그것이 바로 자유인이요, 그것이 바로 자유인의 법칙이며, 그것이 부처며 그것이 보살의 행위며 그것이 진리 아니겠습니까? 부처는 가만히 있으면 부처고 생각 냈다 하면 법이고 법신이고 움죽거렸다 하면 화신인데 어째서 화신 따로 있고 법신 따로 있고 부처 따로 있습니까? 아니, 중생이란 이름 따로 있고 그렇게 이름이 많으나 그것은 우리가 한마음 한뜻으로서 조화를 이루려니까, 회전을 하려니까 이름을 지어 놓은 것뿐이에요.
그러니까 이 모두를 그렇게 해서 자유권을 얻으시려면 첫째, 모든 건 주인공을, 자기 참주인공을 믿으셔야 합니다. 항상 얘기하죠. 주인공이란 꽉 찬 나라고. 이 안테나와 같다고요. 그러니까 그것을 믿고 거기에다 모든 것을, ‘안 되는 것도 거기서밖에는 못 해.’ 하고 맡기고 또 되는 거는 감사하게 거기다 놓고 이렇게 해 나갈 수 있다면, 그러면서 부지런히 뛰면서 생각하고 그런다면 앞으로 머지않아서 그런 여건이 주어질 거라고 봅니다. 자기를 꼭 반드시 찾게 됩니다. 그것은 찾는 게 아니라 발견하는 겁니다. 누구나가 다 있기 때문입니다.
그럼으로써 여러분이 병고에 휘달리는 것도 해결할 수 있고 또 ‘내가 자빠져도 코가 깨져. 왜 이렇게 안 돼?’ 그러는 것도 해결할 수 있고요. 껄껄 웃으면서 ‘참 즐겁구나. 사람이 이렇게, 이렇게 즐거울 줄이야. 허무함이 없이 이렇게 즐거울 줄이야.’ 이렇게 생각하고 갈 수 있는 그 느긋함이 생길 것입니다.
외계의 존재에 정신을 뺏긴다는…
질문 스님께서는 외계의 존재가 있어 우리의 정신을 뺏어가기도 한다고 하신 것 같은데 좀 더 자세히 알고 싶습니다.
답변 만약에 다른 혹성에서 마음세계로 치닫고 있는 사람들이 있어서 지금 지구의 과학자들이 연구하고 또 발전하고 이러는 것을, 지구에서는 어떻게 하고 있나 하고 지구를 방문을 해서 모두 돌아보고 가도 여러분 눈에는 보이지 않습니다. 그걸 아셔야 됩니다. 그래서 마음이 계발되지 못하면 아마 다 송두리째 뺏겨도 뺏기는 줄 모르게 뺏길 수도 있다 이 소립니다. 뺏긴다고 해서 죽는 것은 아닙니다만 두뇌가 무질서해질 수밖에 없죠. 여러분이 알고 있고 듣고 있고 보고 있는 그 자체를 그냥 빼 가도 여러분은 어디다가 호소 한마디 못 합니다.
우리가 어떠한 기술을 가졌든지 다 빼서 자기들은 마음으로 한생각에 해결해 버리고 맙니다. 그러니까 우리는 지금 몇십 년을 연구해서 비행기를 하나 만드는데 이건 물질과학이지만, 그들은 심성 과학이기 때문에 한생각에 비행기를 만들어서 타고 다니다가도 그냥 없애 버릴 수가 있죠. 우리가 말을 하다가도 말을 중지하면 말이 끊어지고 없어지듯이, 타고 다니다가도 그냥 내리면 없어져요. 그것뿐입니까? 자기가 만 가지 모습으로 낼 수도 있습니다. 그러니까 한 가지의 실상을 가지고 사는 게 아니에요. 실체를 가지고 살지 않기 때문에 실상이 없고, 실상이 없기 때문에 무법천지같이 자유롭게 살 수 있다 이 말입니다.
그런데 그 반면에 뭐가 있느냐? 해롭게 하려면 한없이 해롭게 하고 이익하게 하려면 한없이 이익하게 할 수 있는, 그러한 무서운 도리다 이런 소립니다. 또 그렇다고 해서 그것이 부처님 자리냐. 그게 아닙니다. 깨쳐서 그런 건 아닙니다. 이것은 모습으로 탄생하게끔 돼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왜? 뜨겁고 춥고 그렇기 때문입니다. 지구처럼 사계절이, 온기와 공기 등 모든 게 구비가 되지 않았기 때문에 이 실체가 나오지 못했을 뿐이지 그대로 자기다 이거죠. 그것은 공기도 필요 없고 아무것도 필요 없는 겁니다. 뜨거워도 뜨거운 게 없고, 차도 찬 게 없고, 공기가 있으나 마나니 자기 하고 싶은 대로 하는 거죠.
실체가 나오지 못하는 그러한 것이 있는가 하면 반면에 동물들도, 우리 인간의 마음보다도 더 높은 차원을 가지고 있는 것이 많습니다. 그런데 실체로 나오진 못했어도 여러분을 하나하나 집어삼킬 수 있는 그러한 능력을 가지고 있다. 그것은 자비를 가지고 있는 게 아니라 능력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사람한테 해로울 일이 너무도 많이 앞으로 닥칠 수도 있다는 사실입니다.
우리 동네만 동네가 아닙니다. 지금 지구로 봐도 작지만, 우리나라로 봐도 똑 손가락 반쪽만 한 것밖에 더 됩니까? 그런데 만약에 우리 마음들이 공부를 해서 잘된다면 땅을 더 차지할 수도 있고 또 우리들이 세계적으로도 융성하게 되고 참, 조그마한 나라이지만 보고 배울 게 있다는 소리를 듣고, 또 조그마한 나라지만 사람이 있다고 말을 할 수 있는 그런 칭찬을 받을 수 있는 문제가 있죠.
그런데 그렇게 모습 없는 모습들이 항간에 모습을 해 가지고도 나타난 것이 있었습니다. 625 때 저는 똑똑히 내 눈으로 지켜봤습니다. 비행기 접시도 봤습니다. 그건 어디서 온 걸까요? 우리 지구 안에서 생기지 않은 건데 어디서 났을까요? 둥글둥글하고 또 이것이 고슴도치처럼 생긴 것도 나타났죠. 눈이 부셔서 볼 수가 없었어요. 그것이 있다가도 사람들이 왁자지껄하거나 그러면 그냥 없어져요. 지금 비행기 뜨는 것처럼 쭉 가서 이렇게 뜨는 것도 아닙니다. 또 불이 퍽퍽 나면서 뜨는 것도 아니에요. 이거는 그냥 환하게 눈이 부셔서 그냥 그쪽을 볼 수 없게 하고 없어지는 그런 자체. 그건 어디서 났을까요? 그런데 여기 과학자들은 그런 거 한 예가 없다고 하지 않습니까?
그러면 어디서든지 지금 모습 없는 모습들이 살고 있고 생명이 있다는 거를 증명할 수도 있지만, 내가 이렇게 말하는 걸 헛되게 생각하실까 봐 그런 얘기를 중간에 넣는 겁니다. 사실대로요. 제가 똑똑히 보지 않은 건 말 안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때가 스물세 살 땐데, 참 잠을 못 자고 곰곰이 생각했던 겁니다.
한 손이 말입니다, 손가락이 다섯 개 있다고만 하면, 우리 손 이건 아무것도 아니죠. 그런데 손 아닌 손은 이 손가락 하나를 떡 올리면 저 다른 혹성에까지 그 손가락이 가요. 가선 이렇게 옭을 수도 있어요. 그렇기 때문에 부처님 자비라면 그렇게 해서 옭아 와도, 죽여도 살리는 것이고 살리는 것도 죽이는 거지만 아, 이놈의 물체들은, 물체 없는 물체들은 말입니다, 그렇질 않아요. 빼 먹어요. 힘을 빼 먹는단 말입니다. 그러면 지금 우리 이 지구 안에서 힘을 다 빼 먹고, 꺼내 먹을 거 다 꺼내 먹고, 다 꺼내서 땔 거 때고 그런다면 자력과 광력은 어디서 다 나며, 우리가 인구는 점점 늘어 가는데 어디서 나서 다 먹고 살렵니까.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이 이 도리, 부처님 도리의 공부를 안 하시면 안 되는 겁니다.
달마 대사께서도 육조 대사께서도 혜가 대사께서도, 어느 스님 쳐 놓고 대덕이신 스님들은 면벽 안 하신 분이 없어요. 무슨 면벽을 했다고 해서 꼭 어디 죽치고 앉아 있는 것만은 아니에요. 오줌 누고 밥 먹고 똥 싸고 움죽거리면서 움죽거리지 않고 면벽을 했다 이 소립니다. 그러니 우리 한생각이 무르익어서, 즉 말하자면 여러분이 나무라면 제 나무에서 제 열매가 열려서 그 열매가 무르익는다면 만 가지 맛이 날 수 있고 만 가지 열매를 열리게 할 수도 있다. 그러나 만약에 제 나무에서 무르익지 않은 열매라면 한 가지 맛이나 낼지 말지 그렇죠. 한 가지 맛을 내 가지곤 아니 됩니다. 이 천칠백 공안도 한 가지, 두 가지 그것 좀 알아 가지고선 대답해 봤자예요, 그거는.
정말 뿌리 없는 기둥이 하늘을 받칠 수 있어야 되는 거고, 또 뿌리 없는 기둥을 자루 없는 도끼로 다듬어서 받칠 수 있어야 되지 않는가. 그래야만이 발 없는 발이 두루 할 거고, 손 없는 손이 두루 할 거고, 말 한마디 아니 하고도 한마음으로 돌아갈 것이고…. 지금 이 시점에서 돌아가는데도 그렇게 무수히, 무시무시하게끔 땅속이나 물속이나, 들이나 허공이나 도대체 이 실체 없는 생명들이 그렇게 많은데도 우리는 그래도 생명이기 때문에 제재하고 사는 겁니다.
그런데 이 도리를 몰라서 이 집을 비워 놓는다면 누가 들어왔다가 나갔다가 해도 도대체 이거는 가늠을 할 수가 없어서 여러분은 몸을 망가뜨릴 수 있고, 그 속에 들어가서 난리를 치면 그 속에 들어간 놈이 주인이 돼서, 온통 괜히 신경질 나게 하고 말입니다, 괜히 차분한 사람을 그냥 신경질 나게 하고, 막 그냥 달아나가게 만들고, 그냥 답답하게 해서 나가서 바람 쐬게 만들고…. 이렇게 하는 것도 다 자기 마음이 아니에요, 이게. 자기 집을 비워 놓았기 때문에 딴 놈이 들어와서 자꾸 그런 짓을 하는 거니 그걸 알고 절대 그러지 말라 이겁니다, 속지 말고.
그러나 ‘주인공! 만 놈이 들어온다 할지라도 한 놈이니까.’ 하고선 용광로에다 넣는다면 거긴 그냥 한 놈밖에 없어요. 그 한 놈도 여러 놈이 들어왔다 나갔다 하기 때문에 한 놈도 한 놈이란 말을 못 하리만큼 돼 있지만 말이에요. 그러니 내 마음을 기르는 데 조금도 쉼이 없이 정진하시기 바랍니다.
생선 장사 하는 게 걸립니다
질문 저는 생선을 잡아다 파는 생선 장사를 하고 있는데 절에 다니면서 살생을 한다는 게 마음에 걸려 늘 마음이 무겁습니다. 근데 할 줄 아는 게 없으니 이제 와서 다른 길을 찾기도 막막한데 어찌하면 좋을지 모르겠습니다.
답변 그것을 이 안으로 자꾸 맡겨 놓아야 합니다. 벌어먹고 살려니까 어쩔 수가 없는 거 아니에요? 그러니까 거기다 맡겨 놓고 하면 그게 무명이 벗겨져요. 그럼으로써 죄가 되지 않는 거지, 만약에 무명을 벗기지 못하고 남의 생명을 앗아 간다면 그거는 뭐, 에누리 없이 죄가 되는 거죠.
그러니깐 관하는 도리를 아셔야 합니다. 그 마음 도리를 조금이라도 알고 관하셔야 됩니다. ‘야, 너도 둘이 아닌 까닭에 네 살은 약으로 내가 먹고, 이 산 사람들이 먹고 네 마음은 내 마음이고, 모두가 생명이 내 생명과 둘이 아닌데…, 무명을 벗어라.’ 이럭하면은 무명이 벗겨지죠. 그러니까 모든 그 도리를 알고 해야지 모르면 한 치도 그게 적용이 되지 않습니다.
그러니까 모든 거를 ‘주인공 당신만이, 저런 그 생물들도 당신만이 무명을 벗길 수 있어.’ 하고 거기다 맡기라는 거죠. 하여튼 기복으로 믿거나 바깥으로 찾는 분들에 한해서는 여지없이 그게 살생이 됩니다. 그냥 살생을 하게 돼서 죄가 될 수 있는 겁니다. 정말입니다, 이거는. 그러니까 꼭 관하는 도리를 배우셔서 실천해 보시기 바랍니다.
출처 : 현대불교(https://www.hyunbul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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