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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대행스님법문] 하나하나 자기한테 오는 문제를 실험해 보라
    대행스님법문 2025. 12. 31. 21:18

     

    공부 체험을 하고 싶어요

    질문 : 저는 요즘 유튜브 법문을 통하여 마음공부를 하고 있는데요, 머리로는 이해가 될 것 같은데 아직 초보자라 좀 그렇습니다. 그렇지만 저도 마음공부 체험을 하고 싶은데 너무 욕심부리는 걸까요?

     

    답변 : 우리 이 부처님이 가르쳐 주신 대 정법은 뭐냐 하면 실행입니다. 실천과 실행! 모두 실험을 해 보세요. 내 가정에 어떠한 거, 내 자식을 위한다든가 내 부모를 위한다든가 내 몸을 생각한다든가 뭐, 어디가 아프다든가 일이 안된다든가 무슨 재판이 걸렸다든가, 어떠한 문제가 내 앞에 언제 어느 때 닥칠지 모르거든요.

     

    그러니까 모든 거는 거기에 맡겨 놓고 한번 실험을 해 보고 실천을 해 보는 데에 아주 목적이 큰 것이 있습니다. 실천 없이는 그것을 어떻게 자기가 체험을 하겠습니까?

     

    그러니까 하나하나 자기한테 오는 문제를 실험해 보시라 이겁니다. 가게를 크게 하는 어떤 거사님이 있는데 딴 사람들은 일요일 날 가게를 봐야 하니까 일요일 날도 못 나온다고 하거든요. 그런데 그 사람이 법회 있을 때 한두 번 이 절에 왔다 가더니 자기 부인한테 “여보게! 그 한두 시간 문 닫았다고 해서 우리가 하늘로 올라가는 게 아니지 않나? 우리 둘이 문 닫아 놓고 가세.” 그래서 어느 날부터 인제 빠지지 않고 법회 날에 온 겁니다. 그렇게 문 닫고 설법 듣고 가는 날은 문 닫지 않았을 때 보다 곱을 더 판다 이겁니다. 두 시간 비웠던 것보다 곱을 더 판다 이겁니다. 이렇게 실천과 실행을 하고 체험을 하고 돌아가는 데는 그냥 뭐, 감탄할 만하죠.

     

    법당에 와서만이 아니라 변소간에 앉아서라도, 또는 집의 안방에서라도, 일을 하면서라도, 나가서 작업을 하면서라도 ‘아하! 지금 내 영원한 이 한마음의 주인공이 아니었더라면’ 즉 말하자면 이 속의 생명들이 아니면 내가 지금 이 껍데기가 어떻게 돌아다닙니까? 그러니 한마음의 주인공 그 자체, 그게 한마음의 일심이거든요. 그게 전체가 말입니다. 그러니까 ‘그 한마음의 일심이 아니었더라면 내가 지금 어떻게 이렇게 작업을 하고 일을 하고 다니겠나. 감사하구나. 오늘도 우리 식구 이끌어 주고 이러는 거는 한마음의 주인공밖에 없구나.’ 이렇게 믿고 다니시라 이겁니다.

     

    그건 왜냐하면 나를 믿으라는 게 아니지 않습니까? 이름을 믿으랍니까, 허공을 믿으랍니까, 형상을 믿으랍니까, 고깃덩어리를 믿으랍니까? 자기 전생의 그 영원한 자기의 근본 주인공을 믿으라는 겁니다. 지금도 자기를 끌고 다니는.

     

    그러니까 모든 이 생활에서 지금 돌아가는 현상만 보고 끄달리지 마시고 내 마음속에서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한번 해 보시면서 나간다면 그대로 될 겁니다. ‘이건 뭐, 내가 아무리 생각해도 이건 안 돼.’ 안 되긴 뭘 안 됩니까? 아니, 자기가 사량으로 안 된다는 건 말이 안 됩니다. ‘허허, 이건 모든 게 전생에 바로 내가 살던 내 영혼의 근본이 그 한마음이 돼서 전부 나가니까 이거는 그렇게 해야겠다.’ 하고 무찌르고 나가는 겁니다.

     

    마음이라는 게 뭐, 그거야 주먹 불끈 쥐고 한번 칼을 뺐으면 드는 거지, 무슨 뭐가 어떠니, 뭐가 어때서 안 되느니 이러고 야단입니까? 그러니 주인공 자리를 확실히 믿고 놓는 데에 실천부터 먼저 해 보십시오. 그러다 보면 체험도 하게 되는 것이니까요.

     

    마음이 쉬어지지 않아요

    질문 : 번뇌를 끊고 오로지 내 마음자리에 몰입하고 싶은데 들끓는 이 마음이 쉬어지지가 않습니다. 특히 요즘은 사회 분위기도 한몫하고 있고요. 어리석은 저를 위해 한마디 일러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답변 : 처음에는 모든 문제를 전부 하나로 몰아야 합니다. 하나로 놔 버려야 한단 말입니다. 내공에다가 그냥 놔 버리세요, 내공에다가. 놨을 때 하나로 되는 겁니다. 내공이란 이름 없는 내공! 이름 없는 게 공 아닙니까? 공에다 다 놔 버렸을 때에 그 공마저도 없더라는 것이 나올 때까지 다 놔 버려라 이겁니다. 그것은 끊는 게 아니라 돌리는 겁니다.

     

    끊어 버리면 부처를 어떻게 이루겠습니까? 끊어 버리는 게 아닙니다. 예를 들어 무쇠가 많은데 말입니다, 못 쓰는 무쇠를 용광로에다가 넣어야 그게 한데 어우러져 녹아서 다시 생산이 되어 나오지, 그거를 못 쓴다고 다 버리나요? 버리는 거 봤어요? 또 금이라 할지라도, 하다가 잘못되고 끊어지고 그랬다고 버리는 거 봤어요? 금방에 가서 다시 생산하지. 그러니까 당신한테서 벌어진 건 당신이 해결을 해야 되는 법입니다.

     

    그러니까 지금부터 그 모든 걸 끊으려고 하지 말고, 모든 것을 바로 하나로만 생각하지, 둘로도 생각하지 마세요. 자기 내공이라고 생각하십시오, 주인공이라고. 주인공은 이름이지마는 지팡이와 같다고 할 수 있죠. 다리가 아픈 사람은 지팡이를 짚어야죠? 나으면 지팡이는 저절로 놔지지 않습니까. 그와 마찬가지로 모든 거를 내공에다가 믿고 다 놔 버리세요. 다 놔 버릴 때 하나로 돌아가게 돼 있습니다. 들이고 내고 들이고 내고 하는 것이 바로 내가 작용을 하는 거지 누가 작용을 하는 게 아닙니다.

     

    이 우주 전체를 갖다가 한 생각에 들 수도 있는가 하면 한 생각에 다 무너뜨릴 수도 있고, 한 생각에 업을 산더미 같이 지을 수도 있고 한 생각에 산더미 같은 걸 없앨 수도 있는 겁니다. 모든 게 한 생각에 달린 건데 왜 그렇게 어렵게 사십니까?

     

    건강 때문에 마음이 불안합니다

    질문 : 나이가 들어가기도 하지만 몸이 많이 안 좋아져서 불안한 마음이 올라옵니다. 병원 가기도 걱정이 되고 그래서 선뜻 나서기도 두렵고요. 마음공부를 한다면서도 이런 마음이 들어 부끄럽지만 용기를 낼 수 있게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답변 : 우리 몸속에 얼마나 많은 의식이 있습니까? 병이 나도 바로 ‘아, 이 병도 한마음 속에서 나온 거니깐 한마음 속에서 낫게 할 수밖에 없지.’ 할 때에 비로소 그 병은 나을 수가 있는 겁니다. 그래 병이 나으면 뭐가 되느냐. 자기가 약사가 된 겁니다. 여러분이 그렇게 해서 가난을 면했다 한다면 바로 여러분이 관세음입니다.

     

    그러니 모든 일체 만법을 다 여러분이 하고, 여러분이 바로 현실의 모든 것을 보는 거고 듣는 거고 행하는 거고, 즐거운 거고 자유스러운 거지 누구를 주는 게 아니에요. 법당에 들어가면 바로 자기가 거기 있으니깐 부처님이 계신 겁니다. 부처님이 거기 있다 하더라도 자기가 거기 없다면 부처님은 없어요. 자기가 변소에 있기 때문에 부처도 변소에 있고 자기가 안방에 있으니깐 바로 부처도 거기 있고 하나님도 거기 있는 겁니다.

     

    그런데 왜 딴 데 가서 찾습니까? 담요나 뭐 이런 거 둘둘 말아 가지고 산 기도 간다고 가지를 않나. 무슨 담요니 뭐니 해서 잔뜩 해 가지곤, 먹을 것도 미숫가루 해 가지곤, 그래도 살 양으로요. 아, 죽어야 죽은 세상을 보지 살고서야 어떻게 죽은 세상을 볼 수 있겠습니까? 그런데 기도하러 간대요. 상대가 어디 있어서 기도를 합니까?

     

    자기는 오븐과 같아서, 바로 자기는 종이라고 말을 합니다. 불교에서는 시자라고 하죠. 그러면 그 집 속에, 오븐이라면 그 집 속에서 별의별 만법을 다 끓여 내고 데워 먹고 거기서 다 나오고 들고 하는 거죠. 딴 데서 합니까? 만약에 우리 몸뚱이가 오븐이라면 거긴 불도 필요하고 뭐, 재료도 필요하고 모두가 필요하죠. 그래서 거기다 넣어서 끓여 먹죠, 자기 먹고 싶은 대로.

     

    여러분도 어렵다고 하지 마시고 오븐에 우리가 먹고 싶은 대로 데워서 먹고 끓여 먹고, 사다가 거기서 해 먹듯이 여러분 이 육신 속에서 다 해 먹을 수 있습니다. 먹고 싶은 대로요. 똥 누고 싶으면 똥 누고 먹고 싶으면 먹고. 여러분이 목말라서 냉장고 문을 열 때에 이유가 붙습니까, 안 붙습니까? 똥 누러 갈 때에 이유가 붙던가요? 이유가 절대로 붙지 않습니다. 이유를 붙이지 마세요. 자기를 자기가 믿고 자기를 자기가 다스려 나가는데 거기 무슨 이유가 붙습니까? ‘나는 이게 아리송해. 이게 아리송해. 그거 뭐, 누구나가 다 말할 수 있는 건데.’ 그렇게 말할 수 있겠죠. 그런데 말입니다, 다섯 살 먹은 아이도 그 이론은 다 알아요. 아마 나보다도 더 잘 알 거예요. 하지만 90살을 먹어도 실천하기는 어려운 거죠.

     

    여러분이 전부 병 앓는 사람 또는 정신이상자, 또 그 뭔가, 콩팥에서 걸러 주지 못하는 병. 난 이름조차도 잘 모르겠습니다만 뭐, 위암 식도암 목암 할 거 없이 말도 못 해요. 그런데 그 재료를 가져왔으니 그 재료를 가지고 실험해 봐라 이럽니다. 나는요, 내가 의사가 돼서 고쳐 주는 게 아니라 당신 마음을 고치면 바로 그건 저절로 고치는 거니까 그 실험을 해 봐라 이럽니다.

     

    모든 사람들이 자기가 한번 실험해서 그거를 탁 포착을 했으면 체험을 하고는 다른 게 돌아오면 또 그걸 가지고 실험을 하고 이렇게 해서 아주 실험한다고 그래도 편안하죠. 일하면서 말입니다. 앉으나 서나 그냥 참선입니다, 실험이고. 그대로 그냥 연구고. 얼마나 편리합니까? 생활이 없고 부처가 어디 있으며 생활이 없고 여러분이 없고 부처님이 무슨 필요가 있습니까? 그러니까 그 불안한 마음도 자기의 근본에 맡겨 놓고 모든 것 주인공이 해결 할 수 있다는 것을 믿는다면 편안하실 겁니다.

     

    비교하며 괴로워하고 있어요

    질문 : 저는 마음공부를 하면서 나름 중심을 잘 잡고 간다 생각하는데 문득문득 다른 사람과 비교를 하면서 괴로워하고 있는 자신을 보고 놀랄 때가 많습니다. 어떨 때는 속상해서 잠을 설친 적도 있어요. 아직 한참 부족한가 봅니다. 저와 같이 미혹한 중생들을 위하여 가르침 부탁드립니다.

     

    답변 : 지금 모든 사람들이 비교를 하죠. 좋고 나쁘다 비교를 하고 예쁘다 또 밉다 ‘아이, 저건 참, 아이고, 저건 저렇게 생겼구나!’ 하고 이럽니다. 그런데 그 비교에 속지 마십시오. 여러분한테 입력이 돼 있기 때문에, 이 수십억 마리의 세포 하나하나가, 그 의식이 털구멍을 통해서 나고 들면서 내 마음을 유혹합니다. 그러면 자꾸 그걸 생각을 하게 되는데, 예뻐하든지 미워하든지 거기에 자기가 충동을 일으킬 게 뭐 있습니까? 자기가 생각하고 비교해서 나가더라도 거기에 속지 말고, 그것을 생각했으면 그대로 그냥 놔두고 거기에 자꾸 속지 마시라 이겁니다.

     

    그래서 우리가 수박을 앞에 놓고도 말입니다, 하얗다 파랗다는 생각을 하고 거기에 속지 말라 이 소리입니다. 그걸 깨뜨려 먹기 이전에 그거에 속지 않아야 그걸 먹을 수 있다는 얘깁니다. 파랗다 하얗다 붉다, 이런 말에 속지 말라 이런 겁니다. 예를 들어서 그런 것을 이 주인공에 놔라 하는 것은, ‘거기에서 나오는 건데 내가 왜 거기에 끄달리랴. 거기서 하는 거니까 거기서 모든 것을 해결을 할 수 있다.’ 그러고선 내가 그렇게 끄달리지 않고 속지 않는다면 수박을 아무 생각 없이 그냥 먹을 수 있습니다. 틀렸습니까?

     

    우리가 살아나가는 게요, 어떤 때는요, 꼬리에 꼬리를 물고 엉뚱한 생각으로 갑니다. 그래 가지고 잠을 못 잡니다, 또. 이게 참, “나는 그렇지 않습니다.”라고 말할 수 있겠죠. 왜냐? 나는 나로 인해서 꼬리에 꼬리를 물고 가는 법은 없습니다. 단 하나, 어떡하면 쉽게 여러분한테 말씀을 해 드려서 여러분이 이해를 해서 이 도리를 알 수 있을까 하는 데서 생각을 하다 보면 시도 읊어지고 어떤 때는 눈물도 흘려지고 말입니다, 아주 먼 산을 바라보고 ‘인간은 왜 먹고 살아야 해? 먹고 사는 거 때문에 모든 게 죽이고 죽고 쫓고 쫓기고 이러지 않나. 이런 처참한 일이 어디 있나.’ 하고선 나 혼자 그럭할 때가 많이 있었습니다. 그랬으나 인제는 좀 다릅니다. 속지 않으면 모두 될 겁니다, 아마.

     

    그래서 전자에 살던 그 자기가 말했고 행했고 한 것대로 입력이 돼 있는 게 지금 현실에 나오는 거니까 속지 마시라 이겁니다. 뭐, 붉다 검다, 모른다 안다 이런 그 모두에 속지 말고, 자기는 자기가 모든 걸 못하든지 하든지 지켜보고 지켜 주고, 자기가 하더라도 꽁지에 꽁지를 물고 밤새도록 잠 못 자지 마시고, 그럴 때는 ‘에이그, 그것도 거기서 나오는 거니 너 알아서 해라.’ 그러곤 그냥 탁 맡겨 놓고 그냥 ‘잠 좀 재워! 네가 있다면 잠 좀 재워, 좀.’ 이러고선 그냥 자는 거죠, 뭐. ‘네가 없다면 모르지만 네가 있는데 잠 좀 재워!’ 이러고선 그냥 자는 거죠.

     

    옛날에 어떤 스님이, 나라의 국사로 아주 유명하다고 하는 분이 아주 재세를 부리고 그냥 스님들을 업신여기고 그러니까 어느 스님이 거기에 왕림을 해 가지고 “내가 지금 어디 있는고?” 하고 그 국사 스님한테 물었더랍니다. 그러니까 “아니, 스님께선 그렇게 풀밭에서 애를 쓰십니까?” 그러더랍니다. 그래서 한참 있다 또 “내가 어디 있는고?” 하고 물었답니다. 그랬더니 “아이, 스님은 왜 들판이고 산이고 그냥 길도 없는 데를 그렇게 다니십니까?” 하더랍니다. 그래서 잠자코 한참 있다가 또 “내가 지금 어디 있는고?” 하니까 깜깜한 겁니다. 문을 탁 닫아 버렸단 말입니다. 그러니까 캄캄하죠. 그러니까 “요 요망한 거!” 하고 그냥 주장자로 한 대 얻어걸리고선 그냥 도주를 하더랍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우리는 이것도 공했고 주장자라는 이름조차도 공했으니 때릴 것도 없고 때리지 않을 것도 없어요. 아무것도 없어요. 아무것도 없다는 건 우리가 그대로 여여하기 때문에 아무것도 없는 거죠. 그러니 거기에 모두 끄달려서 잠 못 자고 병들고, 또 이 회사를 하는 것도 그래요. 그게 망했다고 해서, 장사를 하다 망했다고 해서, 공부를 하다가 지장이 있다고 해서 그거를 낭패로 생각을 하지 말고요, 모든 건 거기에 속지 말고 그건 그것대로, 그 생각이 나오는 건 그것대로 그냥 그 주인공에서는 모든 게 과거에 입력된 게 나오는 거지 지금 현실의 것이 나오는 게 아니란 말입니다. 그러니까 그건 그냥 놔두고 나 할 거를 꾸준히 해 나가세요.

     

    우리가 위가 따로 있고 아래가 따로 있는 게 아닙니다. 머리가 없어도 아니 되고 발이 없어도 아니 되죠? 그래서 부처님께서는 천상천하 유아독존이며 평발이라고 했습니다. 평손! 이거 소홀히 생각할 게 아니죠. 그러니 아래면 어떻고 위면 어떠냐. 이게 둘이 아닌 것입니다. 그러니 그것을 다 끝마쳐서 한번 뒤집어서 양면을 다, 무의 법 유의 법을 한데 합쳐서 이 세상에 내놨을 때는 크나큰, 이 세상의 모든 사람들에게 정말이지 빛을 주는 거와 한가지입니다. 광력을 주는 거죠. 그러니 이 세상에 나왔다가 그러한 거 하나를, 정말이지 모든 사람한테 밝고 밝은 광력의 그 길을 틔워 줄 때 그거는 어마어마합니다.

     

    그러니 속지 마시고, 속아서 잠 못 주무시지 마시고 또 속아서 병들지 마시고, 또 가정도 화목하고 그래야 할 텐데 속아서 그냥 서로 으르렁으르렁하고 껄쭉껄쭉하게 사시지 말고요, 우리 다복하게 한 생을 즐겁게 이렇게 삽시다.

     

    큰스님 부르면 마음 든든해요

    질문 : 해외에서 힘든 유학 생활 중에 큰스님 법문 영상을 보면서 많은 위안을 받았습니다. 지금도 큰스님 색신은 안 계시지만 마음으로 ‘큰스님!’ 하고 부르면 항상 마음이 든든해집니다. 그런데 이렇게 부르는 것도 착이 되는 걸까요?

     

    답변 : 우리가 부르고 싶을 때 “스님!” 하고 부르나 또 애 이름을 부르나 늙은이 이름을 부르나 이름은 문제가 아니에요. 그 생각이 문제지. 그 생각하고 부르는 놈이 누구냐 이겁니다. 그러니까 부르는 놈과 그 대답하는 놈이 항상 같이 둘이 아니에요. 늘 얘기하지만 저 전기가 들어오는 것도 다 전기가 한데 합쳤기 때문에 들어오는 거거든요. 그러니 어떠한 에너지를 용도에 따라서, 우리 우주 만물이 다 자기네들 용도에 따라서 배운 대로 다 쓰이게끔 돼 있거든요.

     

    우리가 땅에서나 허공에서나 이렇게 에너지를 끌어 쓸 수 있는 한 끌어 쓸 수 있는데 왜 없다고 가난하게 우느냐. 너희들이 해서 너희들이 쓰지 어째서 없다고만 하고 그렇게 하느냐. 너희들이 만들어서 얼마든지 쓸 수가 있는데. 그러니깐 수백 년 수십 년 만들어진 것만 쓰려고 하는 겁니다. 잠시 잠깐이라도 만들어서 그 수십 년 쓴 거보다 더 위대하게 쓸 수 있는데도 불구하고 못 쓴다 이겁니다. 그러니깐 사람의 머리들이, 그 누진이 다 하는 거다. 잘해보세요, 빛이 되게.(250526)

     

    출처 : 현대불교(https://www.hyunbul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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