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다시 읽어보는 마하리쉬 가르침] 진아에 대한 최선의 정의는 '나는 내가 있다는 것이다'입니다나는 누구인가? 2026. 5. 17. 21:16
ㅇ. 방문자 : 개아는 업(카르마)에 의해 구속된다고 합니다. 그렇습니까?
마하리쉬 : 업(業)으로 하여금 그 열매를 즐기게 하십시오. 그대가 행위자인 한, 그 동안은 그 향유자입니다.
방문자 : 업에서 어떻게 해방될 수 있습니까?
마하리쉬 : 그것이 누구의 업인지 살펴보십시오. 자신이 행위자가 아니라는 것을 발견할 것입니다. 그러면 자유로워집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신의 은총이 필요한데, 그 은총을 얻으려면 그에게 기도하고, 그를 숭배하고, 그에 대하여 명상해야 합니다. 애씀없이 일어나는 업(業), 즉 자발적인 행위는 사람을 구속하지 않습니다. 진인조차도 그의 육신이 움직이기 때문에 행위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애씀 없거나 의도(욕망)가 없으면 어떤 업도 있을 수 없습니다. 따라서 누구에게나 의도가 있습니다. 여기에는 두가지 종류가 있는데, (1) 사람을 속박하는 속박인, (2) 속박하지 않는 해탈인이 그것입니다.
전자는 포기해야 하고 후자는 계발해야 합니다. 과거의 업이 없다면 어떤 열매도 없고, 과거의 의도가 없다면 어떤 업도 없습니다. 해탈조차도 자신이 행위자라는 느낌이 지속되는 동안은 노력의 결과일 수 밖에 없습니다.
ㅇ. 방문자 : 단일성 의식을 어떻게 성취할 수 있습니까?
마하리쉬 : (이미) 단일성 의식이면서 어떻게 그것을 성취라 수 있습니까? 그대의 질문이 그대 자신의 답변입니다.
방문자 : 자아(自我), 비아(非我),지고아(至高我)란 무엇입니까?
마하리쉬 : 자아는 개인아(個人我)이고, 그 나머지는 평이합니다. 진아는 항상 존재합니다. 누구나 진아를 알고 싶어 하지만, 자기 자신을 아는 데 무슨 도움이 필요하단 말입니까? 사람들은 진아를 뭔가 새로운 것으로 보고 싶어 하지만, 그것이 어떻게 그럴 수 있겠습니까? 그것은 빛도 아니고 어둠도 아닙니다. 그것은 있는 그대로 일 뿐입니다. 그것은 정의할 수 없습니다. 최선의 정의는 '나는 내가 있다는 것이다.'입니다. 경전에서는 진아를 사람 엄지 손가락 만하다거나 털끝 만하다 하고, 전기 불꽃 같은 것이라고도 하며, 방대하다고 하거나 가장 미세한 것보다도 더 미세하다는 따위로 말들을 하지만, 사실 거기에는 아무런 근거도 없습니다. 그것은 존재일 뿐이지만, 실재하고 실재하지 않는 것과는 다릅니다. 그것은 지(知)이지만, 알고 모르는 것과는 다릅니다. 도데체 그것을 어떻게 정의할 수 있겠습니까? 그것은 그냥 존재입니다.
ㅇ. 그리고 스리 바가반은, 따유마나바르(18세기 남인도 진인, 시인)의 전체 저작 속에서 당신이 좋아하는 구절은 "에고가 사라지면 또 다른 '나-나'가 충만한 광휘 속에서 저절로 드러난다."고 하는 것 등이라고 말씀하셨다. 또 당신은 < 스깐다르 아누브후띠>(아루나찰라에서 오래 살았던 16세기 진인)에서 "실재도 아니고 비실재도 아니고, 어둠도 아니고 빛도 아닌 그것이 있다네."라고 한 구절을 인용하셨다.
ㅇ. 알라하바드 대학교의 페르시아어 및 우르두어 교수인 회교도 모하메드 하피즈 사이에드 박사가 질문했다.
방문자 : 이 외부적 나툼(현상계)의 목적은 무엇입니까?
마하리쉬 : 이 나툼이 그대의 질문을 야기했습니다.
방문자 : 맞습니다. 저는 마야에 싸여 있습니다. 여기서 어떻게 벗어날 수 있습니까?
마하리쉬 : 누가 마야에 싸여 있습니까? 누가 벗어나고 싶어 합니까?
방문자 : 스승님, '누구냐?'고 물으시면 저는 그것이 무지한 저라는 것을 압니다. 감각기관과 마음과 몸으로 이루어진 저 말입니다. 저는 폴브런트의 책을 읽고 나서 이 '누구인가?'하는 탐구를 해 보았습니다. 서너번은 고양된 느낌을 느꼈지만 그 상태는 한 동안 계속되다가 사라졌습니다. 어떻게 하면 '나'안에 자리잡을 수 있습니까? 부디 저에게 그 단서를 주셔서 저를 도와 주십시오.
마하리쉬 : 새로 나타나는 것은 때가 되면 또 사라져야 합니다.
방문자 : 영원한 진리에 도달하는 방법을 부디 말씀해 주십시오.
마하리쉬 : 그대가 바로 그것입니다. 그대가 언제 자기와 떨어져 있을 수 있습니까? 그대 자신이 되는 데는 어떤 노력도 필요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그대가 항상 그것이니까요.
ㅇ. 방문자(위의 회교도 교수) : 여기 있을 때는 제 마음이 순수한데, 이곳을 등지자 마자 제 마음은 너무나 많은 대상들을 동경합니다.
마하리쉬 : 그 대상들이 그대와 별개입니까? 주체없이는 어떤 대상도 있을 수 없습니다.
방문자 : 그러면 제가 그것을 어떻게 압니까?
마하리쉬 : 바로 그것이면서 무엇을 알고 싶어 합니까? 두 개의 자기가 있어서 하나가 다른 하나를 안다는 것입니까?
방문자 : 다시 되풀이 하지만 선생님, 어떻게 하면 이 모든 것의 진리를 알고 그것을 체험할 수 있습니까?
마하리쉬 : 새로운 어떤 것을 얻는다는 것은 없습니다. 자기로부터 무지를 제거하는 것이 필요한 전부입니다. 이 무지는 자기를 자기 아닌 것과 동일시하는 것입니다.
ㅇ. 방문자(위의 회교도 교수) : 영적인 진보를 이루고 싶은 사람은 누구나 행위 아니면 포기(無爲)를 택해야 합니까?
마하리쉬 : 그대가 자기 밖으로 나갑니까? 포기한다는 것은 무슨 뜻입니까?
ㅇ. 한 미국인 기사가 사뜨상(진인들과의 친교)에 대해서 질문했다.
마하리쉬 : 사뜨는 우리의 내면에 있습니다.
방문자 : <나는 누구인가?> 책에서 당신께서는 심장이 마음의 자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렇습니까?
마하리쉬 : 마음이 바로 아뜨만입니다.
방문자 : 아뜨만 자체입니까, 아니면 그 투사물입니까?
마하리쉬 : (그 둘 다) 동일합니다.
방문자 : 서양인들은 마음을 최고의 원리로 간주하는데, 동양인들은 그 반대로 생각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마하리쉬 : 심리학이 끝나는 곳에서 철학이 시작됩니다. 이것은 우리가 체험하는 것입니다. 마음은 태어나는데, 우리가 그것을 봅니다. 그러나 우리는 마음 없이도 존재합니다. 누구의 경험으로도 그것을 증명할 수 있습니다.
방문자 : 깊은 잠 속에서는 제가 존재하는 것 같지 않습니다.
마하리쉬 : 그렇게 말하는 것은 깨어 있을 때이지요. 지금 그 말을 하는 것은 마음입니다. 깊은 잠 속에서는 그대가 마음을 넘어서 존재합니다.
ㅇ. 마하리쉬 : 그대는 '내가 있다'고 어떻게 말합니까? 그대 자신을 찾으러 등불을 들고 갑니까? 아니면 책을 읽고 그것을 알게 되었습니까? 어떻게 알았습니까?
방문자 : 경험에 의해서 입니다.
마하리쉬 : 그렇지요. 바로 경험입니다. 앎은 주체와 대상이 있다는 것(二元化)을 의미합니다. 그러나 ('내가 있다'는) 경험은 끝이 없으며, 영원합니다.
-라마나 마하리쉬 대담록-

로봇스님 수계식, 웃기네요

<'로봇 장난감' 스님과 함께 놀고 있는 '인간'스님들>
'나는 누구인가?' 카테고리의 다른 글
[다시 읽어보는 슈리 푼자 말씀] 그대가 사물들을 보는 것은 그 이면에 깔려 있는 공(空)이 있기 때문입니다 (0) 2026.05.31 [다시 읽어보는 마하리지 말씀] 의식의 근원으로 돌아가게나 (0) 2026.05.24 [다시 읽어보는 슈리 푼자 법문] '지금 현재' 있는다는 것은 '모르는 것' 속에 뛰어든다는 것이다 (0) 2026.04.19 [다시 읽어보는 마하리지 법문] 자기자각을 인식하지 못하는 것이 순수자각상태이다 (0) 2026.04.12 [다시 읽어보는 마하리쉬 말씀] 고통은 신을 깨닫는 방도입니다 (1) 2026.04.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