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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읽어보는 마하리지 법문] 자기자각을 인식하지 못하는 것이 순수자각상태이다나는 누구인가? 2026. 4. 12. 20:49
문 : 저는 절대자에 대한 직접 체험을 원합니다.
답 : 절대자는 경험될 수가 없어.
그건 어떤 대상적인 것이 아냐.
단일성이 될때는, 그것이 자기자각 자체를 인식하지 못하는 순수자각상태이고,
그래서 어떤 주체나 대상은 있을 수가 없어.
따라서 주시한다는 것도 있을 수가 없지.
어떤 나타난 현상, 어떤 작용, 어떤 주시하기란
주객 이원화상태 안에서만 펼쳐질수가 있는 거야.
(무언가를 경험하려면) 주체와 대상이 있어야 하는데,
이것들은 둘이지,
그러나 사실은 둘이 아니고, 같은 것이 둘로 나누어진 것이야.
하나의 양쪽 끝이라고 말할 수 있지.
의식이 움직일 때에 이원화가 일어난다네.
(의식 안에서는) 헤아릴수 없이 수많은 대상들이 있지만,
각 대상마다 그것이 다른 대상을 볼 때는 자기도 하나의 대상인데도 불구하고,
절대의 주체성을 취한단 말야.
한 대상으로써의 "나"가 자기외의 모든 다른 대상들을 인식하고 해석해 버리거든.
이렇게 내가 주체라고 착각하면서, 동시에 주시하기가 일어나는 것이지.
문 : 의식은 왜 움직입니까? 원인은 무엇입니까?
답 : 어떤 원인이랄 것도 없이, 자연적으로 일어나는 것이지.
아무런 이유도 없어.
의식은 우주적 보편성이어서, 개인성은 전혀 없어.
그러나 이역시 자연적으로 생기는 특별한 한 형상(한육체) 안에서 의식이 진동하여
그 육체안에서 작용이 시작되면,
그육체는 자신을 한 개인이라고 착각하는데,
이렇게 무한한 것을 특정 몸안으로 제한시켜 자신을 축소시키므로써,
바야흐로 트러불(갈등)이 시작되는 것이지.
어떤 사람이 해탈인이 되었다고 해 보자구.
그러나 맨처음에 시작한 것은 무엇부터 인가?
그것은 시큼 털털한 저 기본원료인 액체 분비물(정액)로서,
그것때문에 의식이 이렇게 펼쳐지게 된 것이 잖아. 이사람-
바로 이 기본원료, "내가 있다"는 앎이 발달되면서 성장하여 달콤한 맛이 되었고,
그것이 더욱 숙성되어서 깨달은 성인으로 드러난 것이지만 말이야,
그것이 다 무엇이냐 말야.
그것은 다섯가지 원소(地水火風空)로 된 음식의 영양소(육체)로 부터
만들어진 것이란 말야.
그것(육체)이 사라지면 무엇이 남겠는가?
그자신조차 알지 못하는 절대자만 남지.
문 : 자유에 대한 욕망도 하나의 욕망입니다. 그렇죠?
답 : 자유에 대해서는 말하지 말구,
자네자신, 자네가 존재한다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만 이야기 하라구.
그것을 이해하게 되면, 앎과 무지(無知)가 둘다 사라져 버려.
자네에게 무지가 있는 한에는 자꾸 앎의 욕구가 생긴단 말야.
많이 아는 사람은 무지한 사람에게 그 무지(無知)를 제거해 주기 위하여
무언가를 이야기해 주겠지.
이를테면 소위 말하는 일반통념적인 지식과 개념들을 활용(비유)해서 이야기 하는데,
그런데 결국은 일반적인 지식과 무지가 나중에는 동시에 사라져 버린단 말야.
각자(覺者)는 자네들의 무지를 제거해 주기 위하여
어떤 개념의 지식이라도 줄수가 있네.
이 "내가 있음"이 그 지식인데, 자네는 지금 이것을 이해하고 있네.
그런데 이 "내가 있음"이라는 지식을 없애 버리기 위하여,
스승은 이런 또 다른 개념을 자네에게 다시 주고 있는 것이야.
자네가 음식 영양분에서 나온 결과인 "내가 있음"이 아니라는 사실을 이해시키기 위해서
이렇게 이야기하는 것이야.
그것을 한번 깨닫게 되면, 깨달은 스승이 그대에게 준 개념은 어떤 것이든간에,
이 "내가 있음"과 함께 저절로 모두 버려지게끔 되어 있어.
그리고 마지막으로 남는 것이 절대자 라네.
이것이 실제적으로 일어나는 상황이야.
자네가 "나는 이렇다, 나는 저렇다"라고 절대로 말할수는없어.
(자네가 깨닫게 되면) 아는 것이 아무것도 없어.
이것을 이해하고 의식의 영역을 초월하는 사람은 아주 희귀하지.
내가 하는 얘기를 듣고나서,
자네는 속으로 '아주 간단하구만'하고 생각하겠지만,
그게-, 그렇게 생각처럼 쉬운것이 아냐-, 이사람아-(070206)
- 의식과 절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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