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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율-맑고 깨끗해 오염이 없으니 선정-늘 흔들리지도 않고 고요해 지혜-집착하는 마음도 없어 자재 부처님의 세상을 아는 그 자리에서 바로 깨쳐 더 이상 공부할 것이 없는 것이 ‘돈오돈수’입니다. 그러나 부처님의 세상을 안 듯 하지만 확실한 자기 체험이 없는 사람은 수행을 통하여 깨쳐나가는 과정이 필요합니다. 이 과정에서 참선 수행이 필요한데, 모든 경전과 어록에서는 먼저 참선 수행자가 지켜야 할 계율도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계율을 잘 지켜야 마음이 편안해져 고요한 선정으로 들어갈 수 있으며, 마음이 고요해야 사물을 있는 그대로 지켜 볼 수 있는 지혜가 생깁니다. 그러므로 계율과 선정과 지혜는 하나의 몸통과 같아서 동시에 배워 나가는 것이라고 하여 삼학(三學)이라고 말합니다. 아직 배워나가는 중생의 입장에서는 계율, 선정, 지혜가 각각 따로 닦아나가는 것처럼 보일 수 있지만, 대주스님께서는 이 삼학이 부처님 마음자리에서 동시에 쓰이는 모습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본문] 문 : 삼학(三學)을 함께 동시에 쓰는 것이라고 하는데, 삼학이 무엇이며 함께 동시에 쓴다는 것은 무엇을 말합니까. 답 : 삼학은 계율, 선정, 지혜 이 세 가지를 말한다. 문 : 계율, 선정, 지혜는 무엇을 말합니까. 답: 맑고 깨끗하여 오염된 마음이 없는 삶이 계율이다. 흔들리지 않는 본디 마음을 알고 바깥 경계에 대하여 고요한 마음이 지속되는 것이 선정이다. 흔들리지 않는 본디 마음을 알 때 마음이 흔들리지 않아 고요하다는 생각도 내지 않고, 맑고 깨끗한 마음을 알 때 마음이 맑고 깨끗하다는 생각조차 내지 않으며, 선과 악을 모두 분별하되 그 가운데 집착하는 마음이 없어 자재한 것을 지혜라고 한다. 만약 계율과 선정과 지혜의 그 바탕이 얻을 수 없는 것임을 알고 분별할 것이 없다면 곧 이 세 가지는 동일한 바탕이다. 이를 일러 삼학을 함께 동시에 쓴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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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설> 이 내용은 보조스님이 말씀하신 ‘수상정혜’와 ‘자성정혜’라는 개념과도 일맥상통합니다. 수상정혜는 중생의 근기에 따라(隨相) 드러나는 선정과 지혜(定慧)인데, 이것은 중생의 마음상태를 말합니다. 여기서 부처님의 선정과 지혜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많은 수행이 필요한데, 선정의 힘보다 지혜가 부족하면 지혜의 힘을 키우는 쪽으로 수행을 하고, 선정보다 지혜의 힘이 많으면 선정의 힘을 키우는 쪽으로 수행을 하여 선정과 지혜의 균형을 맞춰 가야 합니다. 이 균형을 맞추어 가면서 선정과 지혜의 힘이 완전해져 수행이 끝날 때 부처님의 본디 마음자리에서 선정과 지혜를 함께 쓰는 것이 자성정혜입니다. 지금 대주스님은 부처님의 마음자리에서 계율, 선정, 지혜를 말하고 있으므로 자성정혜를 말하는 것입니다. 서산대사도 <선가귀감>에서 이런 계정혜(戒定慧) 삼학에 대하여 “마음에 아무런 흔적도 없어 분별이 일어날 일이 없는 것을 ‘계율’이라 하고, 분별하여 집착하는 일 없어 헛된 생각이 없는 것을 ‘선정’이라 하며, 거짓말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의 마음을 드러내는 것을 ‘지혜’라고 한다.”라고 하였습니다. 계율은 부처님의 마음을 훔치는 도둑을 잡는 것이요, 선정은 잡은 도둑을 감옥 속에 묶어 놓는 것이며, 지혜는 부처님의 마음을 훔치는 도둑을 죽여 없애는 것입니다. 계율이란 그릇이 먼저 올곧고 굳세어야 선정이란 마음이 점차 맑고 깨끗해지고, 이 마음이 맑고 깨끗해져야 밝은 지혜가 그 속에서 드러납니다. 계율, 선정, 지혜 이 세 가지 배움이야말로 진실로 온갖 번뇌를 없앨 수 있는 것입니다. 계율을 부처님의 근본 마음자리에서 이야기하기 때문에 대주스님도 관행적으로 쓰는 오계나 십계라고 말하지 않고 “맑고 깨끗하여 오염된 마음이 없는 삶이 계율이요, 오염된 마음이 없어 늘 흔들리지 않는 고요한 마음이 선정이며, 그 가운데 집착하는 마음이 없어 자재한 것이 지혜”라고 말한 것입니다.
- 원순스님 (송광사 인월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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