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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대행스님법문] 한점의 마음이 이 우주를 삼킬 수도 있는 것입니다
    대행스님법문 2026. 3. 4. 21:19

     

    마음공부에 진전이 없어요

     

    질문 : 마음공부를 하면서 조금씩이라도 달라지고 싶은데 진전이 없어 답답합니다. 한 단계씩 좀 성장할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요.

     

    답변 : 그러니까 우리가 이렇게 살아나가면서 마음공부 하는 것이 공부 같지도 않고 뭐, 헬렐레하게 생각되기도 할 거예요. 요건 요렇고 요건 요렇고, 요렇게 배우면서 한 계단 한 계단 이름을 가지고서 이렇게 해 나아가야 공부하는 것 같죠? 그런데 우리는요, ‘사방이 다 터져서 밟을 계단이 없다. 마음은 체가 없는 거니까 강을 건너가려면 강을 건너가고, 또는 산을 넘으려면 산을 넘고, 또 손을 잡아 주려면 잡아 주고 마음대로 해라. 마음대로 하되, 사람으로 태어났다면 나쁘고 좋은 거는 알 수 있을 거다. 그러니까 나쁘고 좋은 거를 알면 그 나쁜 것은 좀 제껴 놓고 좋은 생각으로 더불어 같이, 이렇게 나갈 수 있는 그 마음으로, 나쁜 사람이라고 버리지 말고 그것도 한데 넣어서 그냥 좀 탁탁 뛰어 봐라.’ 이거죠.

     

    그러니까 한 발로 뛰어 봐라 이거예요. 아, ‘한 발로, 한 손가락으로 버텨서 하늘을 받칠 수도 있다’고 그랬는데, 항상 여러분한테 ‘체는 공했다. 체는 고정됨이 없어서 항상 보고 듣는 것도 다 고정된 게 없고, 그러니까 바람처럼 날아간다. 우리 인생은 구름처럼 둥둥 떠서 가는 도중이다. 우리 구름이 스러져 버리면….’ 하는 얘기나 또 막이 내리면 그뿐이라고 하는 탤런트 얘기, 뭐, 별소리 다 해 가면서, 손짓 발짓 다 해 가면서 여러분과 더불어 같이한 것은 남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부처님께서 둘 아닌 일대사의 인연을 맺으셨다고 했습니다. 둘 아닌 일대사라면 전체를 말합니다. 요 벌레 한 마리라도 내 몸 아님이 없고 내 모습 아님이 없고 말입니다. 그러니까 ‘내 자리 아님이 없고, 내 삶 아님이 없고’ 이랬으니까 ‘과거 미래 현재도 없고, 그냥 그대로 여여하고 그대로 우리가 둘이 아니다’ 하는 이런 인연을 맺으셨단 말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은 그냥 무조건, 예를 들어서 나쁘게 사는 게 아니니까, 만약에 수백 명을 건질 수 있다면 그냥 점프해라 이거야. 그런데 용기가 없죠, 패기가 없죠, 관습이 많죠, 욕심이 있죠, 습관이 있죠. 그러니까 그냥 거기 말려서 뛰어나가려 해도 뛰어나갈 수가 없어요, 마음이 말입니다. 마음을 마음대로 쓰라고 마음이라고 그랬는데 마음대로 쓰지를 못해요, 마음을 가지고도.

     

    어떤 사람 집에 아침에 도둑이 들었는데 전부 죽을 뻔했다고, 그래서 친정에 와 있다고 그래요. 그런데 이런 공부 하는 사람 같으면 항시 울타리를 쳐 놓고 산단 말입니다. 지금 시대가 좀 문제가 많으니까, 우선 만나면 죽지는 않겠지만 내가 놀라니까, 모두 그저 놀라지 않게, 무섭지 않게, 둘이 아니게 이렇게 울타리를 쳐 놓으면 들어올 사람이 없거든. 그런데 미리미리 그렇게 마음으로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거를 왜 그렇게 못 하느냐 말입니다.

     

    지금 지구 대기권에서 이렇게 망이 쳐져 있는 거는 법망이란 말입니다, 법망! 우리 몸에도 법망이 있어요. 즉 말하자면 이 세포가 법망이죠. 이 법망이 없으면 온갖 곳에서 들어와서 이거 못 삽니다. 세균성도 들어오고 영계성도 들어오고 유전성도 들어오고 전부 끼어들어 가지고…. 그래서 법망이 있어서 잘 들어가지도 못하게 하고 나가지도 못하게 하지요. 이 속에서 만약에 양 개체가 대립해서 싸우면 이 집만 무너지게 돼 있어요. 집만 무너지고 그놈들도 다 죽게 돼 있죠. 그러면 똑같이 또 인연이 돼서 또, 또, 또 간단 말입니다. 뭘로 태어나든지 또 똑같이 가게 돼 있어요. 그러니까 이거는 천 년이 갈는지 수천 년이 갈는지 모르는 거예요. 그러니까 살아생전에 이거를 다 벗어야 된다 이겁니다.

     

    그러니까 실천을 해서, 그저 알든지 모르든지, 내가 힘이 없다, 있다 이거를 논의하지 말고, 그저 모르는 머슴아이가 왜, 물 땅땅 치고 그냥 막 개구장이처럼 놀듯이 그냥 점프해서 올라가서 해결을 하고 이래라 이겁니다. 그게 뭘 내가 할 줄 모르고 알고가 없어요. 자불은 본래 있는 겁니다. 자신의 불성이 본래 있기 때문에, 그래서 내가 항상 그런 말을 하지 않습니까?

     

    본래 불성이 있기 때문에 여여한 줄 알고, 본래 불성이 있기 때문에 갖추어 가지고 있는 줄 알고, 본래 불성이 있기 때문에 만법을 들이고 내고 자유자재할 수 있다. 본래 불성이 있으니까 찾을 필요도 없다. 있는 것만 믿으면 된다. 저 나무가 자기 뿌리 있는 걸 믿고 그냥 살듯이, 그냥 믿기만 하면 되는 건데…, 그게 없다면 내가 이렇게 말을 하고 움죽거릴 수가 없어요. 여러분도 답답한 심정이지만 나도 겉더껑이로만 말을 할 수밖에 없는 이 심정을 알아주세요.

     

    그러니 여러분도 ‘그렇게 할 수 있다’는 그 믿음을 진실하게 가지세요. 살기 위해서만 그렇게 할 수 있다는 게 아니라, 죽은 세상 산 세상을 왕래할 수도 있고 점프할 수도 있는데, 그렇게 계단을 밟아서 꼭 그냥 낑낑거리고 올라오려고만 하지, 왜 그냥 뛸 줄은 모르느냐 이거죠. 어차피 체가 없는 나가 체가 있는 나를 형성시켜서 자기 집을 삼아서 이렇게 다니는데 왜 그걸 믿지 못하고, 주인을 믿지 못하고 그렇게 그럽니까?

     

    의정이 생기지 않을 때는

     

    질문 : 마음공부를 하면서 마음이 많이 편해짐을 느낍니다. 이 몸을 벗을 때도 내가 가고 싶을 때 자유롭게 가고 싶습니다. 그리고 이 몸 벗기 전에 한번 용맹정진을 해 보고 싶은데 별 의정이 생기질 않습니다. 이럴 때는 어떻게 정진해 나가야 하는지요.

     

    답변 : 자기가 서서 죽든지 앉아 죽든지 누워서 죽든지 자기 마음대로겠죠. 옷 벗는 것도, 내가 전에 그랬죠. 이 업을 모두 녹이지 못하고 그 애고 속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면 콩이 익지 못한 콩깍지와 같다. 익지 못한 콩깍지는 까도 속껍질이 찰싹 붙어서 떨어지질 않습니다. 그게 까도 붙어서 떨어지지 않는 것이 바로 아파서 질질 매고 그냥 죽네 사네 하고 온통 남을 괴롭히고 이런 거와 같습니다, 표현을 하자면. 그러나 콩이 잘 익은 것은 탁 건드리기만 해도 콩이 그냥 싹 나옵니다. 그와 같다 이겁니다.

     

     

    어떤 분들은 ‘이건 늙었는데 뭐, 내가 이런 공부는 해 뭘 해?’ 하는데 바쁘게 돌아가니까 젊어서 또 나와야 하지 않겠습니까? 젊은 사람보다 외려 더 쉽게 젊어질 거니까 빨리 해야죠. 그러니 노인네든 젊은이든 애든 어른이든 남녀를 막론해 놓고 이 도리를 알아서 벗어나야만이 우리가 이 다람쥐 쳇바퀴 돌듯 도는 애고 속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전에 가만히 보면요, 스님네들이 그 도리를 몰라서, 생각하면서 뛰고 뛰면서 생각하는 도리를 몰라서 말입니다, 스님은 이렇게 그냥 가만히 앉아서만이 있는 것이 스님인 줄 알고 그렇게 돌아간단 말입니다. 그냥 만들어 가지고선 의정을 내는 거예요. 만들어 가지고 의정을 낸다면 그건 의정이 의정이 아니죠. 스스로서 의정이 나야지 그게 진짜 의정이죠. 이런 것은 어디서 왔을까? 이 화나는 것은 어디서 왔을까? 또는 즐겁게 생각이 나는 건 또 어디서 올까? 자기가 스스로 의정이 나야만 의정이지 이거를 만들어 가지고, 아는 것도 일부러 만들어 가지고 의정을 내는 건 의정이 아닙니다. 이 모두가 사람이 생각하면서 뛰고 뛰면서 생각하고, 부지런히 마음의 계발을 해서 이렇게 해야만이 우리 스님네들이나 여러분이나 다 같이 그 공덕의 의미를 세밀히 알고 실천을 하는 데 조금도 어색함이 없을 것입니다.

     

    그러니까 여러분이 애고가 있고 병고가 있다고 해서 금방 그것만 애원하지 말고, ‘그것이 바로 공부할 수 있는 재료다.’ 이렇게 생각을 돌려서 하셔야 합니다. 그냥 그것만 앞장세우고 그냥 애탄지탄하지 마시고 ‘야, 이런 수확이 어딨어? 이런 게 닥쳤기 때문에 내가 공부할 수 있다. 그리고 실험을 해서 체험을 하겠다.’ 한다면 고도 고가 아니에요.

     

    어디 길을 걷다가 지루할 때 말입니다, 혹은 차를 타고 가다가도 그 차가 밀려서 지루하게 쉴 때가 있죠? 그럴 때도 어떠한 좋은 생각을 해서 생각을 할 때는 그 차가 쉬는지 안 쉬는지도 몰라요. 길을 걸을 때도 지루하지도 않고요. 그런데 그냥 멀건히 있으면 얼마나 지루하겠습니까, 그게. 가고 옴이 없이 마음이 가고 오고 뛰는데 뭐가 지루합니까? 그렇다고 그냥 별거 아닌 거를 그냥 꼬투리를 잡아서 자꾸 망상이라고 하지 말고 모조리 다가오는 대로 거기다 놓고 신선한 생각을 한번 해 보는 것도 좋습니다. 아주 남이 안 하는 신성한 생각 말입니다. 그래야 발전이 되는 겁니다.

     

    그러니 여러분이 모든 애고 병고, 유전성 영계성 세균성, 어떠한 문제가 닥친다 하더라도 ‘흥!’ 하고 코웃음 탁 치고 웃을 수 있는 그런 물러서지 않는 믿음이 돼야 되겠죠. 어떠한 게 닥치든 ‘허, 이게 공부할 수 있는 재료가 또 생겼네. 네가 그렇게 공부하라고 내놓은 거니까 그렇게 아프지 않고 어떠한 고가 닥치지 않게 하는 것도 너 아니야. 체험하게 하는 것도 너고.’ 이렇게 모든 것을 타파하고 넘어갈 수 있는 재료로 알고 공부 열심히 해 보십시오. 그러다 보면 자연스럽게 의정이 떠오르게 되는 겁니다. 조급하게 생각하지 마시고요.

     

    일어나는 마음 때문에 힘들어요

     

    질문 : 한동안 아이들 키우는 낙으로 살았는데 요즘은 아이들이 자꾸 제 뜻을 거스르고 제 뜻대로만 하려 하니 마음이 일어나서 너무 힘이 듭니다. 가장 가깝게 여기는 가족에게서 상처받는다는 게 이런 거구나 하고 우울해지기도 합니다. 이 마음을 다잡을 수 있게 한 말씀 일러 주십시오.

     

    답변 : 그 마음이 어디서부터 좇아 나오느냐 하는 게 문제입니다. 여러분의 영원한 생명에 의해서 마음은 바로 수천수만 가지로 낼 수 있습니다. 그렇게 수천수만 가지의 마음을 낼 수 있는 여건이 되기 때문에 바로 차원이 높아질 수도 있고 차원이 낮아질 수도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세상의 업보도 윤회도 인과응보도 거기서 모두 가져오는 거죠. 그렇다면 여러분이 이날까지 수억겁 광년을 거쳐 오면서 그렇게 쫓고 쫓기면서 그 치열한 싸움에, 치열한 개발에, 치열한 진리에 의해서 인간인 고등 동물로 오기까지 얼마나 치열한 피를 흘렸겠습니까?

     

    그런 반면에 우리는 그 잠재의식 속에, 카세트라고 표현합시다. 잠재의식 속의 그 카세트에 수억겁에 거쳐서 감기고 감기고 또 감기고, 그 얽히고설키고 한 업보와 또는 인과응보와 유전성과 모든 것이 거기 감겨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팔자 운명은 여러분이 해 놓고 받는 거지 누가 갖다 주는 것도 아니고 뺏어 가는 것도 아닙니다. 자기 한 것만치입니다. 그렇다면 그 업보에 의해서 또는 인과응보, 유전성에 의해서 병고도 가난도 모두 거기서 각본대로 나오는 것입니다. 연예인들이 감독한테 대사나 모든 걸 받아서 각본대로 영화를 하듯이 말입니다.

     

    그런다면 그 잠재의식 속에 얽히고설킨 그 자체를, 일차적으로는 그 모든 걸 녹여야 되지 않겠습니까. 녹일 때에 어떤 사람은 ‘그 모든 망상을 끊어라.’ 이럽니다. 어떻게 끊어집니까, 그게? 끊어질 수 있겠습니까? 그것이, 즉 말하자면 바로 인과의 줄이, 어떻게 보이지 않는 줄이 끊어지겠습니까? 그러나 여러분은 그 망상이 있기 때문에 부처를 이룰 수 있다는 것을 생각하십시오. 망상은 끊는 게 아니라 녹이는 겁니다. 녹이는 게 아니라 둘이 아님을 알게끔 해 주는 것이 바로 녹이는 겁니다. 우리가 그 습을, 그 살아나오던 악하고 선한 습을, 거기서 각본대로 나오는 모든 걸 그 자리에다 다시 놓는다면, 맡겨 놓는다면 그대로 녹아 버리는 겁니다.

     

    그러니 어떤 문제가 생기더라도 ‘모든 것은 주인공 자리에서, 잘못된 것도 거기에서 나를 다지고 테스트하기 위해서 나에게 잘못된 거를 주는 것이다.’ 하고 맡겨 놓으면 그건 스스로 잘됩니다. 여러분이 그것을 생활에서 실천해 보신다면 그것이 납득이 될 겁니다. 이건 거짓이 아닙니다.

     

    또한 우리 몸에도 이런 게 있습니다. 간이나 위나 심장이나 콩팥이나 대장 소장이나 이자나 방광이나 어느 부분을 막론해 놓고 모든 생명들이 일차 이차 삼차 사차 오차까지, 뼈의 세포까지 생명체들이 전부 얼개미 같은 그런 법망을 쫓아다니면서 운행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운행하는 그 생명들은 어디를 따르느냐? 내 한생각에 따르게 돼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나이기 때문입니다. 바로 그것은 옛날의 태초의 내 모습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내 마음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한마음의 그 뜻, 한 점의 마음은 이 우주를 삼킬 수도 있는 것입니다. 그런 능력이 여러분에게 모두 주어져 있다는 사실을 아셔야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 한생각에 의해서 주인공에 감사하게 맡겨 놓고 안 되는 거는 안 되는 것대로 되게 하느라고, 이렇게 다지기 위해서, 나를 가르치기 위해서 이렇게 끌고 가는구나 하고 참 감사하게 생각하면서 능력을 기르는 겁니다.

     

    말하자면 이 축이라는 게 있습니다, 축. 우주의 축이 있는가 하면 인간의 축도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마음에서부터, 이 축에서부터 오관을 통해서 정신으로 가서 이 전체의 몸을 통하게 돼 있습니다. 그러니까 마음 한 점, 그 한 점에 달렸습니다. 여러분이 구덩이에 빠지느냐 안 빠지느냐도 한 점 마음에 달려 있으니 이 생각 하나를 귀중하게 생각하십시오. 아무렇게나 생각해서 아무렇게나 던지고 자식들한테도 아무렇게나 욕을 하거나 부부지간에도 아무렇게나, 조금만 잘못해도 “저런 도둑놈 같으니….” 아, 이렇게 말을 마구 하면 안 된다 이겁니다. 그 생각, 그 말 한마디가 얼마나 사람에게 중요한지 모릅니다. 그대로이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금방 그 자리에서 닥치진 않아도 그냥 그대로 닥치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그 한생각이 내 몸을 끌고 가는 데 역점이 되고 또는 운전수가 되고 또는 사공이 된다는 얘기죠. 나침반도 될 수 있고요.

     

    그래서 그 축이 모든 거를 행해 나가는 데 용광로와 같다 이겁니다. 용광로와 같아서 잘못된 거, 잘된 거 모든 거를 거기다 맡겨 놓으면 그냥 녹아 버립니다. 이런 인연줄이라는 게 그렇게 무서운 거예요. 이열치열과 같이 뜨거운 물은 뜨거운 물이 녹인다는 문제가 있습니다. 그런 거와 마찬가지로 자기가 죄업을 지은 거는 스스로서 그것을 녹여야지, 강제성을 띄어서 녹이는 것도 아니고, 칼로 끊어서 끊어지는 것도 아닙니다. 그러니 일차적으로 내 몸 하나 건강하게 끌고 다닐 수 있는 여건을 갖는다면 바로 가정을 끌고 갈 수도 있는 것입니다. 그건 왜냐?

     

    아주 오래 전 일입니다만 어느 신도가 정성을 보름 동안 남편이 승진을 하게 하려고 정성을 지극히 들였는데 말입니다, 끄트머리에 뭐가 나왔냐 하면 승진이 안 되고선 좌천이 됐습니다. 그러니까 그 신도가 그냥 울고불고 그래서 찾아왔거든요. 그래서 “안 되는 것도 법, 되는 것도 법이야.” 그렇게 인제 쫓아 보냈죠. 그런데 서너 달 만에 와서는 또 “참 감사합니다.” 그러는 거예요. “왜 그러냐?” 그러니까 남편 대신 다른 사람이 승진이 돼 가지고 월남에 갔다가 해골로 왔다 이겁니다. 그러니 얼마나 감사합니까? 그 뒤에 남편이 다시 승진을 했답니다. “아이고, 감사합니다.” 하고선 울기에 “그것 봐.” 그러고선 난 아무 소리 안 했습니다. 사람이 지내 보고 겪어 보고, 자기가 걸어 봐야 알아요, 모든 것을.

     

    그러니까 우리가 그렇게 집념 있고 좀 인내 있게 기다리면서 지켜보면서 연구하면서 발전하면서 나가야지 그냥 절이나 하고 그냥 갖다 기도나 하고 그런다고 해서 되는 게 아닙니다.

     

    꿈을 꾸고 마음이 안 좋을 때는

     

    질문 : 며칠 전 아주 기분이 안 좋은 꿈을 꾸었는데 아직도 마음에 걸립니다. 이러럴 때 마음을 어떻게 놓아야 하는 것인지요.

     

    답변 : 지금 우리가 생각하는 대로, 내가 항상 말하지만 “꿈을 꾸거나 이렇게 살아가면서 누구의 얘기를 듣거나 이래도 나쁘게 생각하지 마라. 잘되는 거 못되는 걸 떠나서 내가 주장하는 생각으로 그냥 나가면 그게 법이다.” 이럽니다. 남이 잘됐다거나 못됐다거나 너는 나쁘다 너는 좋다 이런 걸 다 떨쳐 버리고 망상에 그냥 개입하지 말고 내가 주장하는 대로, 꿈을 꿔서 나쁜 생각이 들어가더라도 주인공에 맡기고 ‘야! 나쁜 생각이 왜 들어? 내가 모두 좋게 생각을 하면 좋게 돌아지는데!’ 하고선 좋은 생각을 해서 거기 탁 맡겨 놓으면 좋게 그냥 돌아가는데, ‘아이고, 이거 이렇게 되면 이거 어쩌나.’ 하곤 그냥 그럭하면 고렇게 일이 돌아옵니다. 돌아와 닥친단 말입니다. 그래서 한생각 하는 게 그렇게 중요하단 얘깁니다. 그러니 두려워 마시고 그냥 한생각 좋게 돌려놓으세요.(25.12.19)

     

    출처 : 현대불교(https://www.hyunbul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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