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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읽어보는 마하리쉬 말씀] 자기가 알던 모르던 상관없이 모두가 자기자신의 진아를 자각하고 있다나는 누구인가? 2026. 2. 8. 20:59
ㅇ. 모두가 자기 자신의 진아만을 자각하고 있읍니다.
그런데 놀라운 일이지요 !
그들은 존재하지 않는 것을 존재하는 것으로 여기고, 현상들을 자기와 별개로 보니까 말입니다.
아는 자가 있는 한에서만 온갖 앎(직접지,추론지, 분별앎 등) 있을 수 있읍니다.
만일 아는 자가 사라지면 그와 함께 모든 것이 사라지게 됩니다.
그것들의 타당성은 그 사람의 타당성과 같은 정도입니다.
ㅇ. 채드윅 소령이 다음과 같은 질문을 했다.
에드워드 카핀터 씨라고 하는 어떤 신비가는 한 책에서 말하기를, 자신은 몇번 진아 깨달음을 얻었는데, 그 효과는 한동안 지속되더니 점차 사라져 없어졌다고 합니다.
반면에 <스리 라마나 기타>에서는 "매듭은 한번 끊어지면 영원히 끊어진다."고 합니다. 이 신비가의 경우에는 진아 깨달음을 얻고 난 뒤에도 속박이 계속되었던 것 같읍니다. 어떻게 그럴 수 있읍니까?
마하리쉬는 다음과 같은 <해탈정수>의 구절을 인용하였다.
제자는, 온통 눈부시게 빛나고 단일하며 끊어짐없는 존재-지(知)-지복의 상태를 깨닫고 난 뒤에, 스승에게 자신을 내맡기면서 어떻게 하면 자기가 스승의 은혜를 갚을 수 있겠느냐고 겸손하게 여쭈었다.
스승이 말했다. "네가 끊어짐 없는 지복 안에 영구히 안주하는 것이 나에 대한 보답이다. 거기서 벗어나지 않도록 하라."
질문 : 지고의 지복을 한 번 체험해 놓고, 어떻게 거기서 벗어날 수 있습니까?
마하리쉬 : 아, 물론이지요 ! 그럴 수 있읍니다. 아득한 옛적부터 그에게 들러붙어 있는 성향(원습)이 그를 끌어낼 것이고, 그러면 무지가 그를 엄습합니다.
질문 : 끊어짐 없는 지복 안에 안정되게 머무르지 못하게 하는 장애들은 무엇입니까? 그런 것들은 어떻게 극복할 수 있습니까?
마하리쉬 : 그 장애들은 이런 것입니다.
(1) 자신의 순수한 존재를 잊어버리는 무지
(2) 그 체험이 실재의 체험이었는지 비실재의 체험이었는지 궁금해 하는 의심.
(3) '나는 몸이다' 하는 관념과 세계는 실재한다는 생각에서 오는 착각.
이런 장애들은 진리를 듣고, 그에 대해 성찰하고, 집중(명상)함으로써 극복됩니다.
체험은 일시적인 것도 있고 영구적인 것도 있다고 하지요.
처음하는 체험은 일시적인데, 집중에 의해 그것이 영구적으로 됩니다.
전자의 경우에는 속박이 완전히 소멸되지 않읍니다. 그것은 미묘하게 남아 있다가 때가 되면 다시 나타납니다. 그러나 후자에서는 그것이 완전히 소멸되어 다시는 나타나지 않습니다. <스리마드 바가바드 기타>의 요가 낙오자라는 표현은 전자의 부류에 속한 사람들을 가리킵니다.
질문 : 그러면 진리를 듣는 것은 소수의 한정된 사람들에게만 해당되는 것입니까?
마하리지 : 거기에는 두 부류가 있습니다.
보통 사람은 어떤 스승이 해설하고 설명하는 진리를 들으 수 있읍니다.
그러나 성숙한 사람은 자기 스스로 의문을 제기하고 자신의 내면에서 그 답을 발견하는데, 그것은 바로 끊어짐 없는 '나-나'입니다.
이 체험에 대해 성찰하는 것이 두 번째 단계입니다. 그리고 그 안에 일념으로 머무는 것이 세번째 단계입니다.
질문 : 그 일시적인 체험을 삼매라고 부릅니까?
마하리쉬 : 아닙니다. 삼매는 세번째 단계의 일부입니다.
질문 : 그렇다면 진리를 듣는 것조차도 아주 소수의 사람에게 한정되는 것 같읍니다.
마하리쉬 : 구도자들은 두 부류로 나누어지는데, 기존 수행자(전생에 충분히 수행을 한사람)와 미(未) 수행자( 전생에 제대로 수행을 하지 않은 사람)가 그것입니다. 전자는 꾸준히 헌신으로 자신의 원습을 이미 극복했기 때문에 마음이 순수해져 있고, 어떤 체험도 해 보았읍니다. 그러나 그것이 뭔지는 이해하지 못합니다. 그러다가 어떤 유능한 스승의 가르침을 듣기만 하면 영구적인 체험을 하게 됩니다.
후자의 부류에 속하는 구도자는 그 목적을 성취하려면 대단한 노력을 해야 합니다. 진리를 듣고 성찰하고 집중하는 것은 어떻게 도움이 됩니까? 그런 것은 수행이 되어, 결국 그의 진아 깨달음으로 끝나게 됩니다. 네번째 단계는 해탈의 최종 단계입니다.
ㅇ. 채드윅 소령이 마하리쉬에게 물었다.
질문 : 우주의식의 섬광을 체험했다고 이야기하는 서양인들의 깨달음은 어떤 성질의 것입니까?
마하리쉬 : 그것은 하나의 섬광처럼 왔다가 섬광처럼 사라져 버렷읍니다. 시작이 있는 것은 반드시 끝이 있읍니다. 항상 존재하는 의식을 깨달았을 때에만 그것이 영구적입니다. 의식은 실로 우리와 함께 합니다. 누구나 '내가 있다'는 것을 알지요. 누구도 자기 자신의 존재는 부정할 수 없읍니다.
깊은 잠이 든 사람은 의식이 없지만 깨어 있을 때는 의식이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똑 같은 사람입니다. 잠자던 사람과 지금 깨어있는 사람 사이에 바뀐 것은 없읍니다. 깊은 잠 속에서는 자신의 몸을 자각하지 못했고, 따라서 몸-의식이 없었읍니다. 생시의 상태에서는 자신의 몸을 자각하므로 몸-의식이 있습니다. 따라서 그 차이는 몸-의식이 일어났다는데 있지, 진정한 의식에는 아무런 변화도 없읍니다. 몸과 몸-의식은 함께 일때는 한계가 있다는 것입니다. 이 한계가 바로 속박입니다.
'몸이 나다'라는 것이 착각입니다. 이 거짓된 '나'라는 느낌이 사라져야 합니다.
진정한 '나'는 항상 있습니다. 그것은 지금여기 있습니다.
그것은 결코 새로 나타나지 않고 다시 사라지지도 않습니다.
존재하는 것은 영원히 지속되어야 합니다. 새로 나타나는 것은 결국 사라질 것입니다.
깊은 잠과 생시를 비교해 보십시오. 생시에는 몸이 나타나지만 잠들었을 때는 그렇지 않습니다.따라서 몸은 사라질 것입니다.
그러나 의식은 몸보다 먼저 있었고, 몸이 사라진 뒤에도 남을 것입니다.
사실 '내가 있다'라고 말하지 않는 아무도 사람은 없습니다. '나는 몸이다'라는 그릇된 앎이 모든 불행의 원인입니다. 이 그릇된 앎이 사라져야 합니다.
그것이 깨달음입니다. 깨달음은 새로운 어떤 것을 얻는 것도 아니고, 새로 생겨난 능력도 아닙니다. 그것은 모든 거짓으로 치장된 장시물들을 제거해 버리는 것일 뿐입니다.
채드윅 소령 : 저는 몸을 떨쳐 버리려고 애씁니다.
마하리쉬 : 사람이 옷을 떨쳐 버리면 홀로 자유로운 상태에 있게 됩니다. 그러나 진아는 한계가 없고, 몸에 국한되어 있지 않습니다. 몸을 어떻게 떨쳐 버릴 수 있습니까? 그것을 어디에 남겨 두겠읍니까? 그것이 어디에 있든 여전히 자기 것이지요.
채드윅 소령 : (웃음)
마하리쉬 : 궁극적인 진리는 너무나 단순합니다. 그것은 원초적인 상태의 존재에 지나지 않습니다. 이것이 필요한 말의 전부입니다. 하지만 단순한 진리를 가르치기 위해 그렇게 많은 종교와, 교리와, 방법들, 그리고 그것들간의 분쟁 따위가 생겨나야 했다는 것은 놀라운 일입니다. 딱한 일이지요 ! 딱한 일 !
채드윅 소령 : 그러나 사람들은 단순한 것에 만족하지 않을 것입니다. 복잡한 것을 원합니다.
마하리쉬 : 그렇지요. 사람들이 뭔가 정교하고, 멋있어 보이고, 알쏭달쏭한 것을 원하기 때문에, 그렇게 많은 종교들이 생겨났고 종교들마다 그렇게 복잡하며, 각 종교의 교리마다 그 신봉자와 반대자들이 있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보통의 기독교인은 이런 말을 듣지 않으면 만족해 하지 않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멀리 천당 어딘가에 계신데 우리는 어떤 도움을 받지 않고는 거기에 도달할 수 없다. 그리스도만이 그분을 알았고, 그리스도만이 우리를 인도할 수 있다. 그리스도를 숭배하라. 그러면 구원받을 것이다.'라고 말입니다. 그 단순한 진리를 만약 ' 하나님의 나라는 그대 안에 있다'고 말해주면 그는 만족해 하지 않고, 그런 말에서 복잡하고 터무니없는 의미를 찾아 낼 것입니다. 성숙한 마음 들만이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그 단순한 진리를 이해할 수 있습니다.
채드윅 소령은 나중에 말하기를, 명상을 하는 도중에 어떤 두려움이 자기도 모르게 일어난다고 했다. 거친 몸에서 영혼이 분리되는 것을 느끼는데, 그런 느낌이 공포심을 야기한다는 것이었다.
마하리쉬 : 그 공포감은 누구에게 있습니까? 그것은 육신을 자기와 동일시하는 습관에서 비롯됩니다. 분리를 계속 체험하다 보면 익숙해져서 공포감이 사라질 것입니다.
라마짠드라라는 사람이 질문했다.
질문 : 심장이 어디에 있으며 깨달음이 무엇입니까?
마하리쉬 : 심장은 신체적인 것이 아니라 영적인 것입니다. (심장을 뜻하는 산스크리트어의) '흐리다얌'이라는 말은 흐리뜨(중심)와 야암(이것)을 합친 말로, '이것이 중심이다.'라는 뜻입니다.
이 심장이 바로 생각이 일어나는 곳이고, 그 위에 생각이 머무르는 곳이며, 그 속으로 생각이 사라지는 곳입니다. 이 생각들이 마음의 내용을 구성하고 이 생각들이 우주를 만들어 냅니다. 심장은 만물의 중심입니다. 우파니샤드에서는 부라만을 '거기서 이 존재들이 태어나는 것'이라는 식으로 말하고 있는데, 그것이 심장입니다. 부라만이 곧 심장입니다.
질문 : 그 심장을 어떻게 깨달을 수 있습니까?
마하리쉬 : 단 한 순간도 자기를 체험하지 않는 사람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누구도 자기와 떨어져 있다고 말하는 사람은 없으니까요. 그가 바로 진아입니다. 진아가 곧 심장입니다.
질문 : 분명하게 이해되질 않습니다.
마하리쉬 : 깊은 잠 속에서도 그대는 존재하는데, 깨어나도 그대로 있읍니다. 같은 자기가 두가지 상태에 있습니다. 그 차이는 세계를 자각하느냐 자각하지 못하느냐 하는 것 뿐입니다. 세계는 마음과 함께 뜨고 마음과 함께 집니다. 뜨고 지는 것은 진아가 아닙니다. 진아는 그와 달라서, 마음을 탄생시켜서 유지하다가 그것을 해소합니다. 따라서 진아가 저변의 원리입니다.
그대에게 누구냐고 물어보면, 그대는 가슴 오른 쪽에 손을 대고 '접니다'하고 말합니다. 그대는 자신도 모르게 거기를 자기라고 가리킵니다. 진아는 이렇게 해서 알려집니다. 그러나 그 개인은 불행한데, 왜냐하면 마음과 몸을 자기로 혼동하기 때문입니다. 이 혼동은 그릇된 앎에 기인합니다. 그릇된 앎을 없애기만 하면 됩니다. 그것을 없애고 나면 깨달음이 일어납니다.
질문 : 마음은 어떻게 제어합니까?
마하리쉬 : 마음이 무엇입니까? 누구의 마음입니까?
질문 : 마음은 항상 헤멥니다. 저는 그것을 제어할 수 없습니다.
마하리쉬 : 헤메는 것이 마음의 특성입니다. 그대는 마음이 아닙니다. 마음은 솟아오르고 가라 앉읍니다. 그것은 지속성이 없고 찰나적인 반면 그대는 영원합니다. 진아 외에는 아무것도 없습니다. 진아 안에 안주하는 것이 핵심입니다. 마음에 대해서는 전혀 신경쓰지 마십시오. 마음의 근원을 찾아 보면 그것은 사리지고 진아가 온전히 남게 될 것입니다.
질문 : 그러니까 마음을 제어하려고 할 필요가 없군요?
마하리쉬 : 만약 진아를 깨달으면 제어할 마음이 없습니다. 마음이 사라지면 진아가 빛을 발합니다. 깨달은 사람에게는 마음이 작용할 수도 있고 작용하지 않을 수도 있지만, 그에게는 진아만이 남아 있습니다. 왜냐하면 마음, 몸, 세계는 진아와 별개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것들은 진아에서 일어나 진아 속으로 가라앉습니다. 그것들은 진아와 별개로 존재하지 않습니다. 어찌 진아와 다를 수 있겠습니까? 진아를 자각하기만 하십시오. 그런 그림자들을 왜 걱정합니까? 그것들이 진아에 어떻게 영향을 주겠습니까?
(마하리쉬가 더욱 나아가 이렇게 설명하셨다)
진아가 심장입니다. 심장은 스스로 빛을 발합니다. 빛은 심장에서 일어나 두뇌에 도달하는데, 이 두뇌가 마음의 자리입니다. 우리가 마음을 가지고, 즉 진아의 반사된 빛을 가지고 세계를 봅니다. 세계는 마음의 도움으로 지각됩니다. 마음이 빛을 받으면 그것이 세계를 압니다. 마음 자체가 빛을 받지 않으면 그것이 세계를 모릅니다. 만일 마음이 그 빛의 근원으로 향하면, 대상적인 앎이 그치고 진아만이 심장으로서 빛을 발합니다.
달은 해의 반사된 빛으로 빛납니다. 해가 지고 난 뒤에는 사물을 보는 데 달이 유용합니다. 그러나 해가 뜨고 나면 아무도 달을 필요로 하지 않습니다. 설사 하늘에 흰달이 떠 있는 것이 보인다 해도 말입니다. 마음과 심장도 그와 마찬가지입니다. 마음이 유용한 것은 그것이 진아의 반사빛이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사물을 보는 데 사용됩니다. 그러나 마음이 내면으로 향해지면 비춤의 근원이 스스로 빛을 발하며, 마음은 한낮의 달과 같이 희미하고 아무 소용없는 것이 됩니다.
-라마나 마하리쉬 대담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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