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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다시 읽어보는 마하리쉬 법문] 모든 속성과 현상은 거짓나에 속하지 참나에 속하지 않는다
    나는 누구인가? 2025. 12. 7. 20:42

     

    문 : 수행자가 초기 단계에서 그토록 주의 깊게 공부한 경전들도 궁극적으로는 쓸데없다고 말합니다. 어느 단계에서 그것은 쓸데없이 됩니까?

     

    마하리쉬 : 그 경전들의 핵심을 깨달았을 때입니다. 경전들은 더 높은 힘(진아)의 존재와 그것을 얻을 수 있는 길을 가리켜 보이는데 더 유용합니다. 경전들의 핵심은 그 정도일 뿐입니다.

    그것을 이해하고 나면 그 나머지는 쓸데없읍니다. 그러나 경전들은 구도자의 발전정도에 맞추어 주려다 보니 분량이 방대합니다. 계단을 올라갈 때 우리는 이미 올라온 단계는 더 높은 단계를 위한 디딤돌이라는 것을 알 뿐입니다.

    그리하여 올라온 계단들은 계속 전단계가 되다가 마침내 목표에 도달합니다. 목표에 도달하면 그것만이 남고 나머지는 모두 쓸데없게 됩니다. 이런 식으로 경전들은 쓸데없게 됩니다.

    우리는 많은 책을 읽읍니다. 그 읽은 것을 우리가 다 기억합니까? 그러나 우리가 그 핵심을 잊어버린 적이 있읍니까? 그 핵심은 마음 속에 젖어 들고 나머지는 잊혀집니다. 경전도 그와 마찬가지 입니다.

     

    실은 그 사람이 자신을 한정되어 있다고 여기는 데서 문제가 일어납니다.

    그런 생각이 잘못입니다. 그 스스로 그것을 확인 할 수 있읍니다.

    잠 속에서는 세계도 없고 에고도 없고 그래서 문제도 일어나지 않읍니다.

    그 행복한 상태에서 어떤 것이 깨어나 '나'라고 말합니다. 그 에고에게 세계가 나타납니다.

    그는 그 세계 속의 한점에 불과하므로 더 많은 것을 원하게 되고, 그래서 문제에 빠집니다.

     

    에고가 일어나기 전에 그는 얼마나 행복했읍니까!

    에고가 일어난 것이 현재의 문제가 생겨난 원인입니다.

    에고를 그 근원까지 추적하라 하십시오. 그러면 '잠없는 잠'인 그 차별상 없는 행복의 상태에 도달할 것입니다.

    진아는 지금,여기, 항상 똑 같은 상태에 있읍니다. 더 얻어야 할 것은 아무것도 없읍니다.

    한계들이 있다고 잘못 생각해 왔기 때문에 그것을 넘어서야 할 필요가 있는 것입니다.

     

    그것은 열명의 무지한 바보가 개울을 건너고 나서 자기들이 아홉명 밖에 없다고 한 것과 같읍니다.그들은 개울 건너편에 당도하여 인원을 세어보고 아홉명 밖에 없자, 누군지 알 수없는 열번째 사람을 잃어버렸다고 걱정하면서 슬퍼했읍니다.

    지나가던 나그네가 그들이 슬퍼하는 이유를 알아보고 그들을 세어보니 열명이 맞읍니다.

    바보들은 각자가 자기를 빼고 세었던 것입니다. 나그네는 바보들을 한대씩 때리면서 맞을 때마다 숫자를 세라고 했읍니다. 그들은 '열'자에 만족했읍니다. 이 이야기의 교훈은, 열번째 사람이 새로 나타난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는 내내 그 자리에 있었지만 무지가 그들 모두에게 슬픔을 야기한 것입니다.

     

    또, 한 여인이 목걸이를 목에 두르고 있다가 그것을 깜박 잊어버렸읍니다.

    그녀는 목걸이를 찾기 시작했고, 그것을 수소문 했지요. 친구들 중 한사람이 그녀가 찾고있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고, 찾는 사람의 목에 그것이 걸려 있다고 말해 주었읍니다. 그녀는 자기 손으로 목걸이를 만져보고 즐거워 했읍니다.

    목걸이를 새로 얻었읍니까? (아니지요)

    여기서도 무지가 슬픔을 야기했고, 앎이 행복을 가져다 주었읍니다.

     

    사람과 진아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새로 얻을 것은 아무것도 없읍니다.

    진아에 대한 무지가 현재 가지고 있는 불행의 원인이며,

    진아에 대한 앎이 행복을 가져다 줍니다.

    더욱이 만일 어떤 것을 새로 얻을 수 있다고 하면, 이는 그것이 그전에는 없었다는 것을 뜻합니다.언젠가 없었던 것은 다시 사라질 수 있읍니다.

    따라서 그런 구원에는 영구성이 없겠지요. 구원은 영구적입니다.

    왜냐하면 진아는 지금 여기 있고 영원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그 사람의 노력은 무지를 없애는 데로 향해집니다.

    지혜는 본래적이고 항상 있는 것이지만, 그것이 새롭게 밝아오는 것처럼 보이는 것입니다.

     

    한 방문객 : 진아 깨달음 뒤에도 세계가 지각됩니까?

    마하리쉬 : 이 질문이 누구에게서 나옵니까? 진인에게서 입니까, 범인에게서 입니까?

    방문객 : 범인에게서 입니다.

    마하리쉬 : 그 질문이 누구에게서 일어나는지 깨달으십시요. 그 의심하는 자를 알고 나서도 그런 의심이 일어난다면 (그때는) 대답할 수 있읍니다. 세게나 몸이 자기가 존재한다고 말합니까, 아니면 '보는 자'가 세계나 몸이 있다고 말합니까?

    대상들을 보려면 보는 자가 있어야 합니다. 그 보는 자를 먼저 발견하십시요. 나중에 무슨 일이 일어날 지는 지금 왜 걱정합니까?

     

    조금후에 마하리쉬는 다시 말씀하셨다.

    세계가 지각되든 지각되지 않든 그것이 무슨 상관이 있읍니까?

    세계를 지금 지각하느라고 무엇을 잊어버리기라도 했읍니까?

    아니면 깊은 잠에 들었을 때 그런 지각이 전혀 없다고 해서 그대가 무엇을 얻엇읍니까?

    세계가 지각되든 않든 그것은 중요하지 않읍니다.

    범인은 진인이 행위하는 것을 보면 혼란에 빠집니다.

    세계는 두사람다 지각하지만, 그들의 관점은 다릅니다.

    영화의 예를 들어 봅시다.

    스크린 위에서 움직이는 화상들이 있읍니다. 가서 그것을 붙잡아 보십시오. 무엇이 잡힙니까? 스크린, 화막 뿐입니다. 그 화상들을 사라지게 해 보십시오. 그러면 무엇이 남읍니까? 다시 스크린, 화막만 남습니다. 여기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세계가 나타날 때에도 그것이 누구에게 나타나는지 보십시오.

    '나'라는 바탕을 붙드십시오.

    그 바탕을 붙들고 나면, 세계가 나타나든 사라지든 그것이 중요하겠읍니까?

    범인은 세계를 실재한다고 여기지만 진인은 그것을 자아의 나툼에 불과한 것으로 봅니다.

    자아가 스스로를 나투든 그러기를 그치든 , 그것은 중요하지 않읍니다.

     

    나중에 마하리쉬가 주변에 있는 몇사람에게 말씀하셨다.

    사람들이 마음속에서 겪는 모든 혼동은 진정한 '나'와 거짓된 '나'를 구분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속성과 양상들(잠,꿈,생시상태의 모든 현상)은 거짓된 "나"에 속하지, 참 "나"에 속하지 않읍니다.

    우리의 노력은 자신의 무지를 제거하는 데에만 향해져야 합니다.

    무지가 사라지고 나면 진정한 참나가 항상 존재하고 있다는 것을 발견합니다.

    자기로 머물러 있는 데는 아무런 노력도 필요 없읍니다.

     

                                                                                                      -라마나 마하리쉬 대담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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