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행스님] 세세생생에 끄달리지 않는 자유인이 되십시오대행스님법문 2026. 5. 6. 21:51
여여하게 그냥 갈 뿐이고 볼 뿐이고 들을 뿐이다
어떤 경계가 오더라도 절대적으로 속지 마시고
내 안에 다시 편안하게 놓으신다면
그 곱이 되돌아올 것입니다.
전에도 말씀드렸지만 여러분께서는 종교를 믿는다고 해서 그저 절에 나가서 기도나 하고, 그저 다녀가면 되려니 이렇게만 생각하지 마시고 세세생생에 끄달리지 않는 자유인이 되도록 노력을 하십시오. 그리고 여기 스님들이 여러분을 보지 못했다고 해서 스님들 마음이 여러분 마음하고 결부가 안 되는 게 아닙니다. 여러분이 마음먹기에 달린 겁니다. 나는 여기 왔다만 가도 되고 또 왔다만 가도 스님들은 다 아실 거다. 또 일체제불께서 다 통신이 되시니까, 자기의 마음속에 통신처가 돼 있기 때문에, 자기의 마음이 왔다 갔다는 걸 아는 까닭에 일체가 다 아는 것입니다. 아셨죠? 우리가 스님들 고깃덩어리만 보고 다니는 게 아닙니다. 자기의 몸도 자기의 몸이 아닌 까닭에 소중히 생각해야 된다는 사실을 아셔야 하구요.
오늘은 이렇게 생각이 됩니다. 될 수 있으면 여러분께서 앞으로 물리가 터지는 데도 그렇고 또 공부하는 데 길을 어떻게 가야만 옳으냐 하는 것도 우리가 방치할 수가 없는 겁니다. 그러니깐 때에 따라서 오늘 같은 날은 질문으로 우리 서로 토론을 합시다. 어떻습니까?
질문자1(남) : 제가 얼마 전에 육만 원짜리 벌금을 내게 됐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억울하고 그래서 돌려놓으려고 그래도 안 되고 그래서 막 화를 내고 그랬는데 그 건이 있은 후에 또 그보다 더 크게 십만 원짜리가 생겼어요. 그런데 또 그렇게 안 돌려놔지고 그래서 또 화를 내고 그랬더니 그다음에는 삼십만 원짜리 건이 또 터졌습니다. 그런데 그것도 그렇게 억울하고 그래서 싸우고 그랬는데 그다음에는 사십오만 원짜리가 터지면서 화재가 나는 건이 생겼습니다.
그래서 가만히 다시 생각을 해 보니까 ‘내가 왜 이렇게 번연히 알면서 이렇게 안 돌려놔지고 화를 내고 그랬을까?’ 하면서 다시 반성을 했습니다. 그래서 이제 마음을 다 정리하고 또 그렇게 한 사람들까지도 ‘아, 나를 이렇게 다시 돌아보게 돼서 참 고맙다.’ 하고 다 돌려놓으니까 돈은 내게 되었는데도 마음이 굉장히 편안해졌습니다.
질문 내용은 안팎의 경계에 대해서 매일매일을 무심하고 또 상황에 따라서 그냥 응하고 그냥 먹고 마시고 그렇게 그냥 그냥 산다면 그거보다 더 큰 향상의 도리가 있는지 그것 좀 한번 여쭙고 싶습니다.
큰스님 : 우리가 못났든 잘났든 자기가 이 세상에 나왔기 때문에 자기로부터 상대가 있는 거죠. 그렇죠? 그런데 내면세계에서 당신을 이끌어 가는 데는 바로 그런 점에서 그것이 채찍질을 하는 겁니다. 그러한 돈이 걸렸더라도 그냥 무심으로 돌리라는 게 아닙니다. 진짜로 믿으니까, ‘이것도 주인공 네가 한 거지.’ 하면서 상대방을 고맙게 생각하는 거는 그 사람들이 주인공으로 인해서 댁의 심부름을 하게 됐으니까 오히려 고맙죠. 예. 그렇게 생각을 한다면 오히려 고마운 겁니다. 사실이 그렇구요, 또. 그렇게 생각을 한다면 삼십만 원이고 사십오만 원이고 거기까지 가지 않았을 겁니다. 그런데 그것을 자꾸 그렇게 상대방을 원망하면서 대립이 되니까 알라고 거기까지 간 거죠. 그러니까 한 번에 끝날 거를 두 번 세 번까지 가게끔 된 거죠.
그러니까 우리가 하늘이 무너질 이치가 내 앞에 닥쳤다 하더라도 진짜로 믿고 주장자가 있는 사람은 그냥 허허 웃고, 그렇게 자연스럽게 웃을 수가 있는 겁니다. 그건 왜냐? 힘이 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믿지 않는다면, 아니 믿지 않는 거는 아닌데 믿지 않는 걸로 돼 있는 분들이 많죠. 주인공을 부르면서도 입으로만 불렀지, 진짜 자기 뿌리를 믿는 게 아닙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이 “나도 주인공을 찾았는데 왜 그렇게 나는 안 되느냐?” 이렇게 말씀하시는 분이 있죠. 그것은 벌써 바깥으로 나와 있는 거 아닙니까? 뭐, 누구한테 물어보고 자시고 할 것도 없이 자기 양심을 보고 그 일이 안되는 걸 생각한다면 틀림없는 걸요, 뭐.
그러니까 오래 다니고 오래 안 다니고 간에 처음 왔어도 한번 일러 준 거를 명심하고 오직 그렇게 쥐고 가는 사람, 즉, 급박한 사람, 이런 분들은 좀 쉬운 거 같아요. 우리가 병만 낫자고 이거 공부하는 게 아닙니다. 우리 잘되자고만 또 이렇게 믿는 게 아닙니다. 우리는 이 세상에 나왔다 하면 종자가 뿌리가 되고 뿌리가 바로 자기 싹을 현실로 내놓는 겁니다. 그래서 싹은 보호받는 데가 어디냐 하면 뿌리로써 보호를 받는 겁니다. 그러니까 “상대의 형상, 이름을 믿지 마라. 그것은 도깨비장난과 같으니라. 그러니 너의 내면의, 너의 선장을 진짜로 믿어라. 너를 이끌어 가는 선장말이야.” 그렇게 말씀하셨죠.
우리가 이 내면 공부 하기가 어렵다 하지만 어려운 게 아닙니다. 우리가 공이 색이고 색이 공이라 한 뜻도 가만히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이 형편을 보면 그게 다 나와요. 보는 것도 바람과 같이 사라지고, 듣는 것도 바람과 같이 사라지고, 걸어도 뒷발자국이 바람과 같이 사라지고, 그냥 모두 일거수일투족이 다 바람같이 사라지고, 내가 그냥 볼 뿐이고 들을 뿐이고, 갈 뿐이고 디딜 뿐이고 움죽거릴 뿐이지 앞뒤가 없어요. 떼어 놓는 대로 바람같이 사라지니깐 말입니다.
그러니까 그것을 우리가 안다면 그 가운데 어떤 놈이 걷고 있느냐는 얘깁니다. 그 가운데, 바람같이 사라지는 공한 그 가운데 어떤 놈이 지금 현실에 걷고 있느냐는 얘깁니다. 움죽거리고 있느냐, 보고 있느냐, 듣고 있느냐, 어떤 놈이 그렇게 하고 있느냐는 얘깁니다. 그러니까 그놈 속에, 또 외부적으로는 그렇지만 그놈 속에 선장이 있기 때문에 지금 몸이 움죽거리고 보게 되고 듣게 되고, 상대를 알게 하고 이렇게 한다. 그것을 잘 알아서 좀 실천으로 나가게끔 하십시오.
질문자1(남) : 예. 한 가지만 더 말씀드리겠습니다. 선원에 나오시는 분들도 마찬가지겠습니다만 처음에는 뭐, 몸이 아픈 등 여러 가지 이유로 해서 나오게 되는데 좀 오래 다니신 분들도 물어보니까 법회에 안 나오면 좀 어딘가 서운하고 그래서 나오는 분도 있고, 또 나오면 좋으니까 또 이익이 되니깐 나온다는 분도 계시고 또 아주 열심히 하시는 분들도 계시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어떤 분들은 어느 만큼 공부가 돼서, 또 뭐, 귀신도 보고 여러 가지를 보고 이렇게 다니는 분도 있고요. 그런데 제가 생각했을 땐 법회에 나오는 것은 자기를 더 되돌아보고 근본을 믿도록 자기를 다지기 위해서 나오는 걸로 생각이 되는데 그렇게 그냥 나오는 것은 잘못된 것이 아닌가 해서 한 번 더 말씀드리겠습니다.
큰스님 : 여러분이 어떠한 생각을 하고 나오시든지 나오시는 건 다 나오시는 겁니다. 그런데 이렇게 많은 분들이 있어도 천차만별의 차원의 마음이 있으니깐요. 앞서 오는 사람이 있고 뒤에 오는 사람이 있고 또 그 뒤에 오는 사람이 있듯이. 지금 그렇게 처사가 말한 거와 같이 나를 다지기 위해서, 나를 알기 위해서, 세상을 알기 위해서 저 사람을 따라야 되겠다 하는 걸로 나오는 겁니다. 나오면 우리가 믿는 거는 자기 선장을 믿으면서 헤아릴 때, 귀신이 보인다 이런 것도 ‘나를 알게 하기 위해서니 감사하구나.’ 그러고 놔야지, 그걸 귀신 보이는 걸로 즐거워서 그리로 쫓아간다면 아니 되는 겁니다.
이 모두가, 일거수일투족이 이 마음 안에 안 든 게 없습니다. 그래서 보물이라고 하는 겁니다. 보배라고 하죠. 그 속에는 젖은 거 마른 거, 더러운 거 깨끗한 거, 또는 좋은 거 나쁜 거, 높은 거 얕은 거, 모든 일거수일투족이 다 그 안에 들어 있기 때문에 그 안에 있는 그 자체를 내가 잘 생각해서 컴퓨터에 입력이 되게 해야지요. 그냥 그렇다고 근심 걱정을 해 가면서 생각하라는 게 아닙니다. 살아나가다 보면 인의롭고 여유 있고 지혜롭고 자비한 그 마음으로써 남을 해롭게 안 하고 또는 가정에서도 부드럽고 남의 탓을 안 하고 이렇게 해 나간다면 저절로 컴퓨터에 입력이 돼서 위로는 상세계에 통신이 되고 아래로는 중생들과 같이 또 첨보해서 통신이 되는 겁니다.
그래서 ‘내가 생각하는 걸 이 세상에 어느 누구든지 알지 못하는 사람이 없다, 듣지 않는 사람이 없다, 새도 듣고 하다못해 개구리도 듣고 있다’ 이 소립니다. 내가 마음먹은 거를 그렇게 듣고 있는 이가, 듣고 있는 자들이 이 허공에 꽉 차 있기 때문에 바로 남이 모른다고 하는 그 생각이 어리석다 이겁니다. 그러니만큼 그 어리석은 마음으로 하면 모두가 마음을 주지 않습니다. 그러나 모든 일체 만물이 다 듣는다고 생각을 하고 모두 이롭게 생각을 내 준다면, 모든 거를 다 말입니다. 이롭게 생각을 내 준다면 처사가 어떠한 문제로 인해서 죽어갈 때도 다 이롭게 살려 준다 이거야. 그게 ‘한 손’입니다. 한마음, 한 손, 한 발로 딛는다 이런 소리가 나옵니다.
그러니깐 정신세계의 모든 거를 모른다고,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듣지 않고 보지 못하고 이런다고 해서 내 마음을 가둬 두고 이렇게 어리석은 마음을 갖는다면 세세생생을 깨어나지 못할 겁니다. 지금 무슨 말씀을 하셨는데 내가 이런 말을 하는지 나도 모르고 하고 있네요. 허허허. 그러니까 묻는 본인뿐만 아니라 여러분을 위해서 물으셨으니까 또 나도 여러분을 위해서 대답한 겁니다.
질문자1(남) : 감사합니다.
큰스님 : 이제는 경계가 그렇게 오면 절대적으로 속지 마시고 그 안에 다시 그렇게 편안하게 놓으신다면 그 곱이 되돌아올 겁니다.
질문자2(남) : 이렇게 질문을 드리게 돼서 대단히 고맙습니다. 큰스님 가르침 중에 보면, 알고 몰라야지 모르고 모른다면 안 된다고 말씀하셨기에 거기에 비추어서 문득 생각이 난 게 있어서 한 말씀 여쭙겠습니다. 살생의 인연에 대해서 여쭙고자 합니다. 이 공부를 만나기 전에는 여러 생물들을 제가 살생을 했다고 생각됩니다. 왜냐하면 저는 어려서부터 물가에 살았기 때문에 수많은 고기를 잡았고 재미로도 잡았습니다. 그리고 뱀을 한 마리 죽이면 죄를 하나 없앨 수 있다는 얘기를 듣고 들로 산으로 쫓아다니면서 수많은 뱀을 때려잡아 죽이기도 했는데 그 아픈 몸을 이끌고 굴에 들어가는 모습이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이 됩니다. 또한 수많은 개구리를 잡았고 그걸 팔기도 했고 밟아서 죽는 소리가 좋아서 죽이기도 했고 수많은 개구리를 잡아다가 큰 통에다 끓여서 닭에게 던져 주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이 법을 만나고서 생각을 해 보니 많이 미안하다는 생각은 들었습니다마는 그래도 ‘주인공, 그 인연들이 다 좋은 인연으로 되게 하는 것도 주인공 너밖에 없다.’ 하고 물러서지 않는 믿음으로 지금까지 살고 있습니다. 또한 큰스님 가르침 중에는 여러 인연에 따라서 이야기를 많이 해 주셨습니다. 뱀과 두꺼비 이야기 또는 두더지 또 여러 가지 비유로다 말씀해 주신 이야기를 생각하면 지금도 길에 다니다가 들짐승이 길바닥에 죽어 있으면 ‘주인공, 둘이 아니잖아. 저 인연도 좋은 인연으로 만들 수 있는 건 주인공 너밖에 없어.’ 이렇게 관을 하다 보니까 작은 생물들도 이제는 옛날같이 보지 않게 되었습니다.
지금은 물러서지 않는 믿음으로 가고 있다는. 확신이 서는데 삼세가 일심이고 일심조차 없는 까닭이라면 그런 인연들에 대한 그 생각이 일어났을 적에 어떻게 생각을 바꿔 놔야 되는지 다시 한번 거기에 대해서 가르침을 받고자 합니다.
큰스님 : 죄가 안 되고 되고는 그 생각 차원에 따라서 죄가 되고 죄가 안 되고, 갈림길에 있습니다. 그 공한 도리를 스스로서 알면서 우리가 둘 아닌 도리를 행한다면 첫째, 아무렇게나 남의 생명을 죽이지 않고…. 죽이지 않으면 안 되게끔 앞에 닥친 거, 부모를 보양을 한다든가 윗사람을 보양을 한다든가 뭐를 위해서 산 목숨을 죽이게 됐을 때, 이 공부 하는 사람들은 거기에다가 모든 거를 일임하고 그 생각을 깊이 측은하게 생각하면서 자기 몸과 그 모습과, 즉 죽이는 모습 그것과 그 마음과 내 마음이 둘 아니게 자기한테로 하나로 돌려놓으면 그냥 이거는 인간으로서 천도가 될 것이며 또 그 생명은, 모습은 약이 될 것입니다. 그래 양면으로 쓰게 되죠.
그런데 그거를 영 모르고 잡아 죽이거나 그런다면 하나하나가 더 부풀어 올라서 크게 죄업을 짓게 되는 거죠. 아무것도 모르고 남의 생명을 마구 죽였으니까. 그런데 백정이 수십 년을 백정 노릇을 하다가 이 부처님의 말씀을 듣고서 깨달아서 백정 노릇을 그대로 하면서도 그 많은 생명을 죽였는데, 몇십 년 전부터 죽였는데 지금 현실에 그냥 하나로 돼서 모두가 천도가 됐답니다. 그러니까 죄가 싹 없어진 거죠. 한생각에, 한 깨달음에 그냥 멀고 가까운 게 없이 그냥 다 한순간에 해치워 버린 거죠.
그렇게 해치워 버린 것과 같이 댁도 그렇게 했어도 지금 둘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남의 생명도 귀중한 걸 알고, 내 생명이 귀중하면 남의 생명도 귀중하다는 걸 아시고 그렇게 지금 진행을 하고 가신다면 그거는 다 무효가 됩니다. 왜 무효가 되느냐? 지금 알았으니깐 말입니다. 지금 알았으니까 그 영령은 댁의 마음속에 전부 하나로 들어가도 두드러지지 않고 꺼내도 줄지 않으니까 연방 들어갔다가 천도가 되고 연방 들어가서 천도가 되고 이러는 까닭에 그것이 모두가 없어진다는 얘깁니다.
난리가 나서 싸우는데 군사가 이쪽은 백 명밖에는 안 되고 저쪽에는 천 명이 되더랍니다. 그런데 이쪽의 군사가 적으니까 그 군사를 이끄는 대장이 간곡히 청했습니다. ‘주인공, 당신만이 꼭 이기게 할 수 있고 이 군사들을 용기 있고 의욕 있게 살게 해 주고 우리나라의 국민들을 모두 구해 줄 수 있습니다. 내 형제요, 바로 나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하고 그냥 아주 간절하게 청했습니다. 청했더니 저쪽 군사의 마음들이 전부 해이해져서 자기네들끼리 싸우게 됐더랍니다. 왜냐하면 자기 군사가 적군인 줄 알고, 그렇게 잘못 보여 가지곤 자기 군사들을 자기네들이 다 죽여 버리더랍니다. 이러한 이치도 있다는 사실을, 그래서 묘법이라고 그러는 겁니다.
그러니까 정히 급할 때 그것도 응용하는 거지 급하지 않으면 그런 거를 부처님께서는 쓰지 않습니다. 누구를 이기고 죽이고 이러는 게 아니라…. 그래서 그쪽에 천 명을 자기네들끼리 다 죽이고 한 다섯 명 남았는데 그때서야 눈이 떠지고 귀가 뜨이고 아, 우리 국민들도 잘 살아야 되고 저걸 보니깐 아주, 예를 들어서 옛날에는 신이라고 했습니다. ‘신이 없는 게 아니구나. 이거는 바로 사람들이 됨됨이에 의해서 나라도 섬기게 되는구나.’ 하면서 뉘우쳐서 그 나라를 잘 섬겼다는 얘기가 있습니다.
그러니까 우리 자체들이 지금 생명 하나를 봐도 그게 내 생명과 같아서 애절하게 생각할 줄 알아야 그런 됨됨이를 이룰 수 있다는 겁니다. 그리고 또 내가 죽여도 천도가 된다 이러고 무조건 죽이는 게 아닙니다. 나한테 그렇게 안 하면 안 되리만큼 왔을 때에 마다하지 말아라 한 거지, 강제로 일부러 때려죽이러 다니는 게 아닙니다. 그리고 또 온 거, 내가 꼭 해야 될 거를 마다하지 말라 이런 겁니다. 그건 왜? 벌써 천도가 되기 위해서 자기는 뛰어든 건데, 벌써 알고 뛰어든 건데 그거를 마다하면, 오히려 마다한다면 알고 뛰어들었던 그 영령이 얼마나 기가 막히겠습니까?
간혹 이런 수가 있죠. 이웃집에 죽은 분이 말 좀 해 달라고, 스님한테 가서 내 말만 해 달라고 꿈에 나타나서 간청을 하더랍니다. 그런 예도 있듯이. 그래서 그 소리를 말만 들어도 자기는 되겠으니까 한 거거든요. 여러분이 와서 간청해서만이 우리가 그걸 알고 그러는 게 아닙니다.
여러분이 정신계의 모든 이치를 모르시고 보지 못하고 듣지 못하고 이러고 가시니깐 답답한 게 많으시겠지만 그렇게 안 해 놓으면 무질서하게, 이 도리를 모르는 사람은 도끼 들고 갈 겁니다, 아마. ‘전자에, 과거에 너 이랬지?’ 하고…. 하하, 그냥 무조건 알게만 해놓으면. 이 수행을 거쳐서 그거를 알아야 오히려 더 불쌍하게 생각하고 더 어루만져 줄 겁니다, 원수라도. 그러나 그걸 알지 못하는데 그거를 알게 하고, 보게 하고, 듣게 하고 이렇게 한다면 그냥 도끼 들고 가고, 저놈 내가 죽여야 한다고 하고, 하하하, 아마도 복수를 하려고 애쓸 겁니다.
그러니깐 그런 사람한테 열쇠를 맡기는 게 아니라 높고 낮음을 다 둘로 보지 않는 그러한 사람, 모두 일체를 다 놓고 사는 사람, 여여하게 그냥 놓고 그냥 갈 뿐이고 들을 뿐이고 볼 뿐이다 하는 그런 사람 앞에 바로 열쇠를 맡기게 되고, 바로 그런 걸 알게 하고 보게 하고 듣게 하고 하게 하고, 이런 겁니다. (25,12,5,)
출처 : 현대불교(https://www.hyunbulnews.com)

'대행스님법문' 카테고리의 다른 글
[대행스님] 자기가 자기를 채찍질하면서 자기완성을 하십시오 (1) 2026.05.27 [대행스님법문] 이승 저승 양면을 들고 날 수 있다면 생사가 벗어집니다 (1) 2026.04.15 [대행스님법문] 한점의 마음이 이 우주를 삼킬 수도 있는 것입니다 (0) 2026.03.04 [대행스님] 인간의 마음은 어디 아니 미치는 데가 없다 (0) 2026.02.11 [대행스님법문] 하나하나 자기한테 오는 문제를 실험해 보라 (1) 2025.12.31